책
성 ㅡ 카프카
파랑잉크
2020. 9. 1. 19:23
토지 측량사 K는 성의 요청으로 마을에 왔지만, 자신의 존재를 인정 받지 못한다. 이방인인 K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납득하기 힘들다. 성(권력, 지배층)에 맹목적이고, 절대적 숭배의식에 길들여진 마을 사람들. 관리들의 눈치를 보는 하인과 비서들. 여성을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고, 신격화를 누리는 오만한 관리들. 불합리한 체계 속에서 몇번의 좌절을 겪고도 K는 클람과 성에 이르는 길을 포기할 수 없다. 소설 중후반으로 갈수록 K는 서서히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무리 욕망해도 성은 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불합리는 여러 지점에서 행해지고 있다. 아말리아가 관리 소르티니의 무례한 편지를 거절했다는 죄(?)로 마을 사람들의 의해 배척당한 이야기, 믿었던 바르나바스의 보잘것 없는 실체와 허술한 성의 체계에 대한 이야기. 클람 비서(에어랑어)는 K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클람의 편의를 위해 K가 협조할 것을 요구하는 부분, 서류 배달 하인들이 서류를 아무거리낌없이 찢어버리는 부분. K는 분실된 자신의 서류의 행방을 대충 짐작했으리라.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K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지도, 입증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K가 직접 부조리를 듣고 보았기에 포기 못하고 집착한다.
성은 끝까지 씌여지지 못한 소설이다. 작품해설을 보면, 카프카는 K가 성의 중심부에 끝내 닿지 못하고 병이 들어, 임시 체류자의 신분을 허락받는 것으로 끝맺으려고 했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를 위해 애썼지만, 임시체류자 서류 한 장 떨어진게 전부인 삶. 아말리아 집안의 모습과 겹치면서, 부조리에 맞서는 사람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저 순응하는 삶이 행복할까. 어떤 역사도 순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바꾸려는 시도들이 모여서 사회가 변화한다. 고정된 틀을 벗어난 이방인 K처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지 않을까. 개인이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카프카는 끊임없이 시도하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