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33초
어떤 것도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람이 있다. 4분 33초라는 피아노곡을 작곡한 존 케이지다.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33초간 초시계를 본다. 또 다시 2분40초 동안 시계를 본다. 청중들은 언제 연주를 할 건지 기다리지만 연주는 이미 진행 중이다. 공연장의 미세한 소리들, 청중의 작은 움직임으로 발생되는 부스럭대는 소리가 음악이다. 1분 20초가 더 지나면 3악장으로 구성된 4분 33초 연주곡이 완성된다.
이 곡이 처음 발표 되었을 때 반응이 어땠을까? 사람들은 왜 연주를 안 하냐고 따지며, 이게 무슨 음악이냐고 흥분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처음 이 곡을 알았을 땐, 장난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숨을 죽이고 자세히 귀 기울이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들이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 내가 글 쓰고 있는 조용한 공간에도 시계 초침의 틱틱거리는 소리와 공기청정기가 윙윙도는 소리, 냉장고가 꾸릉꾸릉 대는 소리, 누군가가 현관 문 닫는 소리, 창 밖에 자동차와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아이의 고함소리, 내가 긁적이는 소리, 수도배관을 타고 물 흐르는 소리들이 겹쳐진다. 우연들이 만들어내는 부조화의 하모니가 연주되고 있다.
4분33초. 한 곡 분량의 시간 동안 귀를 기울여보면,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의 것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려준다. 고요 속에 있는 듯해도 세세히 마디를 끊어 들어보면, 수많은 작은 움직임과 소리가 음표처럼 들어있다. 들으려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들을 수 없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면,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온다. 정적 안에도 수많은 소리가 존재하듯, 내 안에도 내가 읽어내지 못한 내 안의 소리가 조잘 되고 있지 않을까. 가만히 나에게 귀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