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개미는 오늘도 파랗다 -좋은수필 2021년 6월호

파랑잉크 2021. 6. 7. 20:04

<좋은수필 2021년 6월호>

9. 창을 열었다. 파랗다. 온통 시퍼렇다. 얼마나 떨어졌을까. 가장 많이 떨어진 놈을 골라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 대체로 긍정적이다. 하락의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장이 좋지 않다. 내 속도 좋지 않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모르면, 공부를 해야 한다. 언제나 공부는 쉽지 않다. 무작정 먹잇감을 찾으려고 달려든다.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씩 차트를 들여다봤다. 파란 선이 엘리베이터 타듯이 쭉쭉 내려왔다. 어떤 것은 파란 막대가 길게 세워졌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 창고에는 차곡차곡 마이너스가 쌓였다. 진정한 투자 사냥꾼들은 파란 날 바쁘다는데, 난 이미 총알이 떨어졌다. 탐나는 주식들이 쏟아져 나와도 그저 침만 흘린다. 좀 부족해도 그리 나쁜 건 없지만, 풍족하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는 부를 증폭시킬 기회가 많다. 부동산에서도 그랬듯이, 주식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발생 시기와 맞물려 개미들이 주식장으로 몰려들었다. 주식 열풍이다. 모이면 주식 얘기다. 안부는 주식 어때?’로 바뀐 듯했다. 실업이 늘어나도 주식 장은 좋단다. 남의 얘기 같았다. 주식 광풍은 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주식을 안 하니, 대화에 끼지 못했다. 궁금했다. 코스피가 한창 치솟은 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주식 세계에 발을 들였다. 처음 맛은 달콤했다. 창을 열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조금 지나자, 장 조정이 들어갈 거라고 했다. 작년에 모든 주식이 너무 올랐단다. 내가 최고점에 뛰어들어 옥상에서 놀고 있는 동안, 점차 쭉쭉 하락하더니, 지하로 떨어졌다. 빨갛던 부분이 파랗게 변할 때면, 조급해졌다. 존버(비속어인 존*+버티다의 합성어를 줄인 말)하던가, 손절(손해를 감수하고 팔기)해야 한다.

 

나는 주린이(주식+어린이)’면서 개미. 주린이에게 매수와 매도는 감이다. 하락장에서 몇 개라도 주워두면, 조만간 탐나는 주식이 될 것 같다. 지금은 퍼렇지만, 탐스러운 사과처럼 빨갛게 익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또 떨어졌다. 빨리 줍지 않고 기다린 내가 대견했다. 움찔움찔한다. 매수 시점을 알지 못한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저점에 있던 주식이 슬금슬금 고점을 향해 나아간다. 매도 시점도 모르겠다. 빨갛게 바뀌어서 어느 정도 수익이 나서 매도하면, 그 후로 멈추질 않고 떡상(어떤 수치 등이 급격하게 오르는 것)한다. 난 감도 없다. 수익을 내고도 마음이 쓰리다. 이래도 저래도 힘들다. 왜 하지? 저금리 코로나 시대에, 방구석에서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합법적 투자라 그런가. 누군가 그러더라. 땅을 파도 100원을 얻기 힘든데, 주식을 파면 커피 값이라도 벌고, 어떨 땐 치킨 값까지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투자를 잘해야 가능한 얘기다. 어떤 이는 인생을 걸듯이 빚내서 투자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를 한단다. 나도 지금, 영혼은 팔릴 것 같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여윳돈 외에는 손대면 안 된다.

 

10시에는 거래량이 점점 늘어났다. 피크타임이다. 어떤 것은 빨갛게 변했다. 그래도 거의 파랗다. 어제 빨간색일 때 팔려다가, 더 오를 것 같아 뒀더니 떡락(갑작스러운 하락세를 강조해서 부르는 말)이다. 사람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적정한 선에서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장기투자는 옛말이다. 개미들은 바쁘다.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후다닥 사고 후다닥 판다. 단타가 대세다. 오후 장을 기대하며 창을 닫았다.

 

12. 궁금해서 잠시 열었다. 역시나 파랗다. 빨간색이 그립다. 빨간색을 이다지도 좋아했던 때가 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없다. 요즘은 왠지 산뜻한 빨강이 좋다. 관심 분야도 바뀌었다. 신문을 볼 때 사설 위주로 보곤 했는데, 주식을 하고 나서는 잘 보지 않던 경제 파트를 제일 먼저 찾아 읽었다. 반도체, 바이오 뉴스가 많아 관련 테마주에 관심이 쏠렸다. 소비 패턴도 주식을 따라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제품에 정이 가고, 구매로 이어졌다. 이미 내가 쓰고 있는 제품 중 괜찮은 것은 어떤 기업에서 생산하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물론 주식을 팔고 나면,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무슨 책을 읽는지 보면, 그 사람이 관심 가지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문학 관련 책들만 읽던 내가, 며칠 전에 주식 책 한 권을 기어이 사고 말았다.

 

2. 점점 개미들이 몰려들었다. 창이 조금씩 일렁이더니, 서서히 움직임이 빨라졌다. 장 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개미는 열심히 움직이지만, 개미만으로는 주식을 구해내긴 힘들다. 작년에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에 맞서서 주식을 구해냈던 동학개미 서학개미(해외주식 개인투자자)’, ‘코인개미(비트코인 개인투자자)로 흩어져 개미의 움직임은 한계가 있다. 거물(기관+외국인 투자자)이 나타나면, 움직임은 가속화된다. 개미는 먹이를 줍기 위해 애쓰다가 점점 위로 끌려간다. 한참 끌려가다 보면 번뜩 정신이 든다. 이 주식을 꼭 먹어야 하나. 후회해도 소용없다. 빨갛게 달아오르던 창이 찬물을 퍼부은 듯 다시 파랗다. 다시 되돌리려 해도, 정상에 우뚝 서 있다. 꼭대기에서 내려가려면 한참 걸린다. 언젠가 구조되리라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장기 투숙한다. 구조대를 기다리며, 수분 보충을 잊지 않으면(물타기: 매입한 주식의 가격이 하락할 때 주식을 추가로 매입해 평균매입단가를 낮추는 행위) 더 빨리 구조대를 만날 수도 있다.

 

3 20. 막장에 다다른 장은 표면적으로는 고요하다. 주식장이 10분 동안 멈춘 듯 보여도,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움직이는 백조처럼, 개미들은 격렬한 클릭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주식 창을 닫았다. 그리고는 밀려오는 허무와 단타의 한계를 느낀다. 시간도 잃은 것 같다. 조각난 시간을 이어붙이면, 책을 100장은 넘게 읽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주식과 함께 평일이 지나가고 주말이 오면, 개미는 잡념 없이 편하게 쉴 수 있다. 주말에는 주식 장을 볼 일이 없으니까.

 

개미에게 주식투자는 뭘까. 은행 금리 1%대에 실망한 이들에게는 끌리는 투자처다. 주식으로 500% 수익을 냈다는 소문까지 떠돌아다니니, 마음이 들썩인다. 물론 내 주변에서는 고수익자를 보진 못했다.  모두가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돈을 잃는다. 무리한 투자와 허황된 기대감은 탈이 나기 쉽다. 주식장에 입성한 지 2개월 된 나는, 주식이 게임 같다. 소액의 여윳돈으로 용돈 버는 재미랄까. 수익이 없는 날도 많지만, 주식이 내려가도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몰라도, 언젠가 오를 거니까. 주식 투자에 맛 들인, 정보에 민감한 개미들은 코인을 캐러 이동 중이다. 급락과 급등이 수시로 벌어지는 비트코인은 한탕주의 도박처럼 불안하다. 코인개미의 행렬을 따라가기엔 내 자산도, 멘탈도, 지식도 약하다.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보다 재산이 적다면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말라는 빌 게이츠의 말이 왠지 공감된다. 나는 주식도 잘 모르는 한낱 개미다. 그저, 내일 아침은 빨간 창을 보고 싶다.               

-2021년 4월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