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無聊)한 시간 - [좋은수필] 2019년 9월호
무료(無聊)한 시간
엘리베이터를 탄다. 몇 층까지 왔는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질 못한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꼭 알아야 하는 것도, 지금 당장 찾아야 하는 것도 없다. 시간을 때울 뭔가가 필요할 뿐이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사람과 어색한 눈인사를 나눌 뿐, 주변은 하나의 사물처럼 굳어버린다.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에서 숨 쉬고 있지만, 애써 형식적인 말을 건네지 않는다. 눈 둘 곳을 찾다가, 손바닥만한 화면 속에 숨어버린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회피하는 행동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공간에 없다. 화면 속의 세계가 현실 세계를 조금씩 삼키고 있다.
친구를 기다린다. 스마트폰은 여기서도 손에 붙어있다. 몇 시인지 시간을 본다. 언젠가부터 손목시계는 집에서 자고 있다. 화면은 다른 화면으로 계속 이어진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뉴스는 또 다른 뉴스를 쏟아낸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너무 많이, 너무 쉽게 보여준다. 곧 흘러가 버릴 것을 알지만, 마치 중독된 듯 훓고 있다. 화면을 향하고 있는 동안, 지금 있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지나치는 바람, 허공을 가로지르는 새소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꽃을 피워낸 민들레, 자신의 팔을 스쳐 지나가는 아는 듯 모르는 사람들. 주변이 나를 제외한 건지, 내가 주변을 무시한 건지. 나는 이방인처럼 멀뚱하게 서서 화면 속에 갇혔다. 어쩌면 스스로 택한 고립을 알면서도 길들어진 터치를 막지 못한다.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면, 그제야 화면을 닫는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현실과 얼굴을 마주한다.
지하철을 탄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삼매경이다. 미뤄둔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고, 웹툰을 보고, 카톡을 하고, 뉴스를 검색한다. 할 게 많으니, 무료하게 보낼 틈이 없다. 운좋게 자리에 앉으면 책을 꺼낸다. 읽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책을 보는 행위가 이질적이다. 슬며시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켜본다. 지하철을 막 올라탄 이도 소외되기 싫다는 듯이 너도나도 스마트폰에 자신을 옭아맨다.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다. 화면의 지시에 따라 손가락이 움직이고, 머릿속이 채워진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 계속 집어넣는다. 화면을 닫고 나면 공허하다. 무얼 하긴 했는데, 무얼 한 걸까. 방대하지만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들, 서로 연결되어 댓글을 주고받아도 속을 알 수 없는 가면 쓴 사람들. 그 안에서 맴돌며 돌아다니다 나를 잃어버린다.
밥을 먹는다. 가만히 앉아 밥을 뜨고 반찬을 집어넣고 우물우물 씹는 정적인 시간. 누군가는 정지된 듯 무료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딜 수 없다. 식당에 가면, 스마트폰이 아이들 눈앞에 놓여있다. 어릴 때부터 화면을 보고 자란, 영상 세대 부모와 스마트폰 세대 아이들의 조합이 만든 풍경이랄까. 아이들은 화면이 끊어지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보챈다. 부모가 아이 눈을 바라보며 영상이 재생되듯 노래하며 율동을 해도, 시선을 끌기엔 역부족이다. 못마땅해도,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화면을 내어준다. 화면에 불빛이 들어오면, 칭얼대던 아이가 조용해진다. 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길들이는 주인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듯 입을 벌리고 턱관절을 움직이며 밥을 넘긴다. 아이들은 현실에선 따라 잡을 수 없는 현란하고 자극적인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들이 컸을 때, 지금의 기성세대와는 다른 생각 구조와 가치관을 가지게 되진 않을까. 깊이 생각하기보다 즉각적인 반응에 따라 행동하고 현실보다 현실에 없는 세계에서 무언가를 찾으며 꿈꾸게 되는 건 아닐까. 실제 삶에서 얻은 만족보다 화면 속 세상에서 얻은 만족이 더 우선시 될지도 모른다. 하긴 지금도 자신의 존재유무를 화면 속에서 인증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글을 기다린다. 텅 빈 화면을 열어두고, 잠잠하게 앉아있다. 지나버린 내 시간들을 하나씩 게워낸다. 화면에 일상이 한 자 한 자 채워지면 잃어버
린 내가 보인다. 나도 모르던 진짜 나, 글에 보이는 '나'는 가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글을 써서 가벼워지는 '나'도 있기에 쓰게 된다. 어떤 이는 나를 보고 무료한 삶을 산다며 안타깝게 여긴다. 좀 더 현실적인 일을 하라고 나무라기도 한다. 난 아직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고 맞설 자신이 없는 걸까. 좀 더 시간이 흐르길 바라는 걸까. 어쩌면, 빈 화면을 글자로 채우고 글자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무료함을 달래듯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무료가 좋다. 언제까지 글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지 나도 알 수 없다. 현실도 화면 속 세상도 때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니까. 역행하고 싶어도, 어느 새 나도 흐름에 떠밀려간다. 생각 없이 흘러가다 허비한 시간이 내 뒤통수를 후려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문득 다른 이들은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무료(無聊)하지만 무료로 흘러보내기엔 아까운 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