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것인가, 맞설 것인가
한 놈이 머리채를 쥐고 흔든다. 비열한 눈알을 부라리며, 군림하듯 한 아이를 윽박지른다. 무엇을 잘못한 것도 없는 아이는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듯이 바들바들 떨뿐, 어떤 반항의 움직임도 없다. 자기 머리 위로 우유가 쏟아져도, 비굴한 눈만 내리깔 뿐이다. 한 놈의 폭주로 교실이 소란스러워도 주변의 모든 이는 침묵한다. 옆에서 행해지는 악행이 들려도 안 들리고, 보여도 안 보인다. 차라리 눈을 찔끔 감아버리는 것이 그들에겐 최선이다. 전학 온 첫 날인 아이(새로이)만이 자신의 감각에 충실한 채로, 개입한다. 그만하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쁜 놈은 무서울 게 없다. 부모의 재력과 권력을 등에 업고 제멋대로다. 아이의 머리채를 더 움켜잡으며, 비아냥댄다. 선생님이 들어온다. 잘못한 걸 잘못 되었다고 잡아줄 어른이 왔다. 어이없게도 “장난치지 말고 자리에 앉아라.” 그 말 뿐이다. 교실엔 믿을 어른이 없다. 새로이는 혼란스럽다. 폭행을 한 아이는 기세등등하다. 새로이가 놈에게 주먹을 날린다. 물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어도, 그 상황에서 놈의 악행을 순간적으로나마 멈출 수 있는 건, 한 방의 주먹이었다. 악행에 맞서도 새로이에게 돌아온 건 퇴학과 아버지의 실직이었다. 놈을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보다가 부조리한 현실을 보는 듯해서 답답해졌다.
한 방의 주먹을 날릴 때까지 새로이도 고민을 했겠지. 다른 아이들처럼 악행에도 눈 감고 자신의 할 일만 신경 쓸 것인지, 개입해서 잘못을 따질지. 선택을 앞두고 고뇌하는 햄릿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 압제자의 잘못, 잘난 자의 불손, 경멸 받는 사랑의 고통, 법률의 늑장, 관리의 무례함, 참을성 있는 양반들이 쓸모없는 자들에게 당하는 발길질을 견딜 건가? 단 하루 단검이면 자신을 청산할 수 있을진대. 누가 짐을 지고, 지겨운 한 세상을 투덜대며 땀 흘릴까? 국경에서 그 어떤 나그네도 못 들어온 미지의 나라, 죽음 후의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의지력을 교란하고, 우리가 모르는 재난으로 날아가느니, 우리가 아는 재난을 견디게끔 만들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양심 때문에 우리들 모두는 비겁자가 되어버리고, 천하의 웅대한 계획도 흐름이 끊기면서 행동이란 이름을 잃어 버린다. - 햄릿 3막 1장 70
햄릿이 우유부단한 인간형이라는 말이 많다. 분개할 뿐, 행동으로 실천을 못한다고 말이다. 우린 과연 어떨까. 잘못된 모습을 보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자신이 당하진 않을까 한껏 움츠리며, 악한 이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쓴다. 타인이 당하는 불합리를 먼 산 바라보며, 자신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 여긴다. 점점 손 내미는 사람은 드물어지고 있다. 오히려 손을 내밀었다가는 무모한 행동이라며 비웃음을 사기 쉽다. 믿고 따를 어른이 없다. 나 역시 비굴하다. 세상에 맞서기보단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중/고등학생이라도 무섭다. 어른이라는 명문으로 잘못된 점을 고쳐주기엔 아이들의 행동은 도를 넘었다. 어른도 못할 일을, 약한 아이들이 어찌 감당할까. 소년법이 폐지하자는 말이 떠들썩하다. 아이의 악행을 부모나 선생님이 막을 수 없다면, 어느 누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잘못을 잡아줄까.
햄릿의 대사에서 지금을 본다. 우리는 참을 것인가. 맞설 것인가. 참지도 맞서지도 못할 거라면, 법이라도 좀 바꾸면 안 될까.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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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박새로이는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캐릭터다.
그래서 짠하고 호구같다. 자신이 손해보면서까지 남에 일에 참견할 오지랖을 가진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
내가 어릴 때 보던 어른의 모습이, 이제는 희귀한 어른의 모습이 되고 있는 듯하다. -2020.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