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날에도 고모는 저런 자세로 병원 출입문 앞에 서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란 구르는 걸 멈추지 않는 한 조금씩 실이 풀려나갈 수밖에 없는 실타래 같은 게 아닐까.  그때 고모는 그런 생각에 잠겨있었다고 했다. 병원 문을 열고 나가면 실타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굴러갈 것이고, 실타래에서 풀려나간 실은 밟히고 쓸리고 상하면서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친밀했던 사람, 아끼던 물건, 익숙한 냄새를 잃게 될 것이고 세상도 그 속도로 고모를 잊어갈 터였다. 어느날은 거울 속 늙고 병든 여자를 보며 이유도 모른 채 뚝뚝 눈물도 흘리기도 하리라. 하나의 실존은 그렇게 작아지고 또 작아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절연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누구의 배웅도 없이, 따뜻한 작별의 입맞춤과 헌사의 문장도 없이....... 오후가 저녁이 되고 저녁이 밤이 될 때까지, 실제로 고모는 그 문을 열지 못했다. - 조해진 [사물과의 작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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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타래는 얼마나 풀렸고, 얼마나 남았을까. 

기억을 잃어도, 여전히 자신의 실타래를 풀면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머릿속 전등이 자꾸만 켜졌다 꺼졌다하는 자신이 얼마나 불쌍하게 느껴질까. 

요즘은 흔해진 알츠하이머. 얼마전,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도 알츠하이머가 소재였다. 

그 드라마를 보다가 두려워졌다. 해질녘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과 행복에 젖은 눈빛이....

내게도 돌아가고 싶은 눈부신 날들이 있으니, 내 실타래가 툭 끊길 때까지 나를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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