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수필(7월호)에 실렸던 글이 The 수필에 실렸다. 감사한 일이다. 책속에서 모인 60인의 글과 삶을 들여다보며 연말을 보낼 것 같다. 황당하고 무서웠던 계엄에 이어, 심장 졸이게 했던 탄핵가결을 지켜봤다. 불안했던 마음이 여전히 가라앉질 않는다. 뉴스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국민이 우선인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내년엔 안정된 새로운 세상이길 바래본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수필을 읽으며, 마음만은 뜨끈해지고 싶다.
그날은 비가 왔다. 장마철이라 어두침침하고 습했다. 잠든 아이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던 빗소리. 안과 밖이 극명한 대비를 이뤄도, 내겐 나른한 오후일 뿐이었다. 거실 매트 위에 누워 아이의 분유를 주문하려고 온라인 쇼핑몰을 두리번댔다. 고요를 깨트리며 전화가 울렸다. 전화로 들려온 말이 비현실적이라 거짓 같았다. 어찌할지 몰라서, 거실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말도 안 돼’만 중얼거렸다. 심장박동은 제멋대로 날뛰었고, 비바람은 끊이지 않고 몰아쳤다. 그때 나는 ‘아내’의 역할을 잃었고, 아이들의 유일무이한 부모가 되었다. 매년 그날이 다가오면, 태엽을 거꾸로 감듯이 그날 오후 4시로 되돌아갔다. 그러면, 빈 가슴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달력에 새겨놓지 않아도, 몸이 그날을 기억하는지 몸살을 앓는다.
나는 성격상 특정한 날을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았었다. 남편과 사별 후에는 어떤 기념일도, 어떤 명절도 무심하게 지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의 기억은 상처를 헤집어 놓는다. 결혼 후 나의 첫 생일날, 남편은 장미꽃 한 송이를 내게 내밀었다. “은아야, 장미꽃 한 송이라 미안해. 매년 생일마다 한 송이씩 늘어날 거야. 100송이가 될 때까지 잘 살자.” 약속은 고작 5송이에서 깨졌다. 만약 사고가 없었다면, 장미꽃은 계속 늘어났을까. 누군가를 챙길 일도 챙김을 받을 일도 없는 사람은, 반복되는 평일보다 이름이 붙여진 특정한 날이 더 외로운 법이다. 요즘은 생일날이 돌아오면, ‘삶이 1년 더 갱신되었습니다’라고 알려주는 느낌이 든다. 축하의 의미도 마치 생존의 기쁨을 나누려는 작은 의식 같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생일을 잘 챙기지 않는 것일까. 갱신될 삶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죽어야만 챙기는 날이 있다. 옛날부터 ‘제삿날’, ‘기일’, ‘회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고인이 된 사람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챙겼다. 자기 자신은 챙길 수 없으니, 남겨진 이들에게 의무처럼 주어지는 날이다. 365일 중 하루. 그래도 남겨진 사람에게는 다른 날의 24시간보다 가슴이 뻐근하다. 남편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사고사라서 뇌 어딘가에 선명한 흔적을 남긴 걸까. 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아픔을 되새김하게 만든다. 나는 남편의 ‘제삿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편과 좋았던 날들도 많은데, 굳이 사고가 난 날을 고통스럽게 다시 생각해야만 할까. 남편이 이 세상에서 없어진 날 이후로, 기일이 돌아올 때면 하루가 빨리 흘러가길 염원했다.
처음 몇 년간, ‘제사’라는 이름으로 의식을 올렸다. 어머니는 사위를 위해 나물이며 떡, 생선 등의 제사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오셨고, 아버지는 붓글씨로 제문을 써서 오셨다. 부모님에게 제사는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돌아가신 조상에게 예를 갖추어 대접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가정과 후손이 평안해질 수 있는 전통 의식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위에게 지내는 제사는, 딸과 손녀를 잘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과 사위를 향한 안타까움을 전하는 마음이다. 어머니는, 제사가 많은 집안에서 평생을 살아왔으면서도 사위 제사까지 챙기려고 했다. 제삿날 며칠 전부터 제사장을 보고, 새벽부터 음식 재료를 다듬고 삶았다.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아버지는 홍동백서, 조율이시를 따져가며 상을 차렸고 제례에 맞춰 의식을 치렀다. 두 분이 애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제사의 여정이 무거운 짐처럼 여겨졌다. 그냥 엎드려 울고만 싶었다. 기일을 다르게 보낼 수는 없을까.
또다시 그날이 돌아왔다. “얘들아, 오늘은 아빠를 많이 생각하는 날이야.” A4 한 장을 꺼내 우리만의 제문을 만들었다. 우선, 백지를 3등분으로 접었다. 백지 가운데 부분은 내 자리다. 남편에게 쓰고 싶은 말을 차분히 적었다. 롤링 페이퍼처럼 아이들에게 종이를 돌렸다. 종이 왼쪽엔 큰아이가 아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오른쪽엔 작은 아이가 적고 싶은 것을 썼다. 아이들은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도, 뭔가를 적었다. 편지 같은 제문이 완성됐다. 음식은 남편이 좋아했거나 우리가 저녁으로 먹을 음식들을 주로 차려 놓았다. 밥, 소고기뭇국, 치킨, 수박, 바나나. 때로는 보쌈, 떡, 두부 부침, 호박전, 피자…. 그때그때 다르다. 잊지 않고 꼭 챙기는 것은, 그가 좋아하던 캔맥주 한 캔. 핸드폰에 담긴 남편의 사진을 찾아 상 위에 세우고, 간단하게 절을 올렸다. 나는 남편을, 아이들은 아빠를 생각했다. 원래 식성이 좋았던 사람이라, 맛있게 잘 먹고 있을 거다. 편지를 읽고, 왼쪽 뺨에 보조개를 지으며 웃고 있지 않을까. 햇빛이 유난히 쨍한 날, ‘많이 생각하는 날’은 잔잔하게 지나갔다.
무의식이 말했다. 이제 끝이라고. 수많은 흰색 운동화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 신발을 무작위로 마구 던진 것처럼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나는 신발 한 짝을 신은 채로, 나머지 한 짝을 찾고 있었다. 내 운동화는 흰 끈으로 매어져 있고, 다른 것들은 끈 없이 밋밋했다. 한쪽 다리로 휘청대며 끈이 있는 신발을 찾으려고 애썼다. 보이질 않았다. 한참을 두리번대는데, 버스가 경적을 울렸다. 조급해졌다. 어쩔 수 없이 주변에 있는 신발 중 한 짝을 신었다. 긴 바지 아래 감춰진 짝짝이 운동화. 똑같은 흰색이라 얼핏 보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를 탔어도 얼떨결에 신고 온 신발 한 짝과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이 신경 쓰였다. 꿈이었다. 꿈을 맹신하진 않지만, 그 꿈은 유난히 선명했다. 스마트폰으로 꿈 해몽을 검색했다. 한쪽 신발을 잃는 꿈은 반려자의 죽음을 의미하고, 신발 한 짝을 다른 신발로 바꿔 신는 꿈은 새로운 사람이 생기거나, 다른 직업이나 일을 가지게 되는 것이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미 잃어버린 반려자를 왜 다시 잃는다는 건가. 그를 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내 무의식까지 파고 들어간 걸까.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 미안했다. 이런 감정은 어디에서 생겨나서, 갑자기 내게로 밀려오는 걸까.
얼마 전, 시아버지의 부고를 문자로 받았다. 그가 없는 시가媤家는 끈이 끊어진 곳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사람의 도리나 규범을 따져보자면, 당장 달려가 며느리 역할을 하고 슬픔을 같이 나눠야 한다. 하지만, 나는 시집 식구들과 연락이 끊긴 지 몇 해가 지났다. 모든 서류가 정리된 후에는, 명절에만 연락이 오가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나는 과거의 장소와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어려웠다. 도망치고 싶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남편만 빠진 상황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니까. 어떤 사건은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배우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나에게 그랬나 보다. 육체적 외상과 달리 정신적 외상은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대처하기가 어렵다. 나만 알고 느끼는 것이라 고립감마저 느껴진다. 회복이 되었나 싶다가도 자잘한 기억이 떠오르면, 한순간에 무기력해진다.순간순간 무너지고, 살아가기 위해 다시 일어난다. 큰형님에게 다음날 가겠다고 문자를 남겼다. 기차표를 예약하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지만 밤새 뒤척거렸다. 춥지도 않은 따신 날에, 온몸이 춥고 욱신거렸다. 가슴에 통증도 느껴졌다. 카디건을 입고 웅크리고 누워도 여전히 아팠다. 힘들어하다 잠깐 잠이 들었다. 새벽 4시 37분. 또 잠이 깼다.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내 몸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불쑥 나와 버렸다. 멈출 수 없었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아, 가슴을 두드렸다. 울면서도 생각했다. 도대체 이 울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도대체 왜 이리도 슬픈 걸까. 사무친다는 말, 나는 싫어한다. 하지만 난 지금 사무쳤나 보다. 그 일이, 그 사람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놓아주질 않는지도 모른다. 날이 밝아올 때까지 울다가 선명해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눈물을 닦았다. 차가운 물로 퉁퉁 부은 눈을 눌렀다. 다시 나는 원래의 ‘고요한 나’로 돌아와야 했다. 아이 앞에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강인한 내가 필요하니까. 실컷 쏟아낸 후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구로역을 지나갔다. 연애할 때 자주 머물던 역이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둘이 같은 곳을 바라보곤 했다.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있던 곳. 저 지점 어딘가에 무언가 환영幻影처럼 떠올랐다. 현실에는 그 남자도, 그 여자도 없다. 우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닮은 사람이라도 찾듯이 둘러봤다. 찾을 수 없는 우리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쓰다가 아이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 역에서 엄마랑 아빠가 많이 만났어.” 그 말을 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구로역 승강장을 유심히 바라봤다. 우리는 잊힌 과거로 답사를 온 듯했다. 부천에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부천은 남편의 형제들이 사는 곳이라 언제나 그와 함께 오곤 했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초췌해진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형님이 먼 길 와줘서 고맙다고 내 손을 꼭 쥐었다. 시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어찌 된 일인지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이미 새벽에 다 쏟아부어 버려서 그런가. 난감했다. 남편의 장례식 때, 시아버지가 나를 꾸짖던 기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아들 앞세운 속상한 마음에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슴에 박혀 쓰렸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온 게 다행이라 여겨졌다. 부디 거기서는 평안하시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장례식장을 나와, 인천가족공원에 갔다. 남편이 있는 주소는 만월당 ‘2-8XX번’이다. 단단한 유리로 막힌 아주 작고 네모난 공간이다. 그 안에는 봉안함과 액자가 놓여있다. 봉안함 안에는 잘게 부서져 가루가 된 그가 있고, 액자 속에는 우리 가족이 환하게 웃고 있다. 맨 아래쪽에 자리한 그를 보려고, 주저앉았다. 여전히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예전의 나와 달랐다. 그곳은 죽은 자들만 모여있어 조용했다. 침묵한 아빠와 마주 앉은 아이들은 어색한지 자꾸만 나를 돌아봤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잘 지내라고 말하고는 뒤돌아섰다. 서울역에서 배를 채웠다. 헛헛함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더 채워야만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근처에 남산이 있다고 말해주니 가고 싶다고 했다. 20대 때, 서울역 근처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퇴근 시간이면, 그가 나를 기다렸다. 그와 같이 걷던 거리를, 아이들과 걸었다. ‘서울로’라는 구름다리가 보였다. 서울이 변했고, 나도 변했다. 오랜만에 높은 구두를 신었더니, 발이 아팠다. 공허를 경감시켜줄 아픔이, 오히려 반가웠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천천히 남산을 둘러봤다. 수천 개도 넘는 사랑의 자물쇠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저 수많은 사랑의 맹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떤 이는 자물쇠를 풀고 자유로워지고 싶지 않을까. 잊힌 자물쇠를 풀어줄 열쇠는 영원히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풀지 못하는 자물쇠는 철조망 한 귀퉁이에 매달린 채, 기약도 없이 갇혔다. 자물쇠는 굳게 잠긴 채로 녹슬고, 낡아간다. 둘이 같이 바라보던 곳에서, 아이들과 같이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발은 더 아팠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적 공허는, 남산 계단에서 비실거리는 육체 때문에 시들해졌다. 남산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보이는 것은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눈빛으로 반짝였다. 내가 아이들에게 보챘다. “제발 그만 보고 가자.”
며칠 후, 흰 운동화 꿈을 꿨다. 친구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시간이 흘렀으니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했다.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질 필요도 없고, 너도 너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좀 자유로워지라고도 했다. 고마운 말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를 떨쳐낼 수 없다. 이렇게 글을 끝내려다 다시 생각했다. 삶의 어떤 것이든 해석이 중요하다. 운동화 꿈이 글 쓰는 삶의 시작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글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지만, 앞으로는 글이 내 삶의 일부분을 차지할 거라고 무의식이 알려준 건 아닐까. 풀지 못할 무언가에 매여 있는 삶이라도,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내 방에 누우면 봉창이 보였다. 손이 닿지 않는 천장 가까이에, 스케치북 크기의 불투명 유리창. 여러 겹의 비닐이 덧대어져 바람도 빛도 거의 들어올 수 없었다. 봉창은 통할 수 없는 창이었다. 그 아래는 어둠에 먹히고, 불안으로 채워진 자리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왔고, 그림자가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때론 봉창 앞에서 잠시 서성이다가 가는 사람도 있었다. 봉창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실체를 볼 수 없기에, 내겐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멀리서 들려오던 뜀박질 소리가 가까워지다 봉창 앞에서 멈추면, 뭔가가 봉창을 뚫고 달려들 것만 같았다. 그럴 때는 언니를 쳐다봤다. 붙박이처럼 책상에 붙어서 무언가를 적고 있는, 뒷모습은 의연(依然)했다. 스탠드 불빛 아래에 펼쳐진 언니의 세계를 깨고 싶지 않아, 조용히 다른 방으로 갔다.
오빠 방에도 창이 있었다. 창문을 열면 계단과 옆집 담벼락이 보였다. 담벼락 아래쪽과 계단 사이에는 자그마한 잡초들이 자랐다. 언제나 거기에서 어떻게든 틈을 비집고 커갔다. 풍족하지 않아도, 자기가 발붙인 곳에서 서서히 몸뚱이를 키우고 꽃을 피웠다. 빛을 향해 고개를 들고 바람이 부는 대로 일렁거렸다. 가끔 방향을 알 수 없는 위쪽 어딘가에서 쓰레기가 날아와도, 잡초는 군말 없이 제 삶을 살았다. 난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창이 좋았다.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작아도, 바깥과 통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오빠 방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창이기도 했다. ‘HAM’이라는 아마추어 무선통신기기와 컴퓨터는 별세상이었다. 오빠가 무선기기를 켜면 ‘치직치직’ 소리가 났고, 암호를 대듯이 영어와 숫자가 섞인 닉네임을 서로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야밤에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할머니는 간첩이 사는 줄 알겠다며 오빠를 야단치곤 했다. 나는 ‘치직’대며 누군가를 찾아가는 신호음이 좋았다. 컴퓨터도 오빠의 애장품 중 하나였는데, 오빠는 컴퓨터 본체의 배를 갈라 들여다보곤 했다. 땜질한 판들과 편편한 줄들이 어수선하게 꽂혀 있었다. 오빠는 틈만 나면 부속품을 빼고 꽂으며 컴퓨터 뱃속을 탐험하고, 모니터의 까만 화면에 글자를 부지런히 입력하기도 했다. 모뎀의 연결 소리는 외계 세상과의 교신 같았다. 타닥타닥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통신으로 연결된 상대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오빠가 없을 때, 나도 슬쩍 검은 창을 두드렸지만, 나에겐 열리지 않았다. 나는 미숙했다. 아직 창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커갈수록 창이 조금씩 열렸고, 나의 꿈도 조금씩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새로운 창이 생겼다. 오빠가 공사판에서 땀 흘려 일해 마련했다. 나는 오빠 방에 몰래 들어가 새로 생긴 창을 열곤 했다. 빳빳한 종이 케이스에서 까만 원반 하나를 꺼내, 블록을 끼우듯 은색 기둥에 원반 구멍을 맞춰 끼웠다. 나이테처럼 새겨진 동심원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숨을 죽이고 기다란 막대를 들어 올린 후, 원하는 포인트에 살짝 내려놓았다. 음악이 물결치는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면, ‘지직’ 신호가 왔다.
Hey Jude, don't make it bad.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 The Beatles 'Hey Jude' 중에서
바늘이 원반 위의 홈을 따라 돌았다. 내 마음도 서서히 블랙홀로 빠져들 듯이,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케니지의 ‘Going home’을 들을 때면, 햇살이 눈부시게 스며들던 고향집 대청마루에서 엄마가 나를 반겼다.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를 들으면 야자수로 둘러싸인 이국적인 호텔 창을 활짝 열었다. 사이먼&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를 들으면, 내게 속삭이듯 다가오는 목소리로 마음을 다독여줬고, 아바의 Dancing Queen을 들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꿈꿀 내가 필요했다.
스마트폰으로 조지 윈스턴의 ‘December’ 음반을 찾았다. 재생창이 열리고, 미로처럼 꼬인 기억이 음악에 맞춰 풀어진다. 피아노 선율 사이 사이에, 내가 못처럼 군데군데 박혀 있다. 15살의 내가, 중년이 되어버린 나를 바라본다. 자잘한 주름, 살면서 겪은 생채기 몇 군데, 점점 느슨해지는 생각, 갈비뼈 사이를 파고드는 공허. 나는 생이 흐르는 대로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고 있다. 그동안 어떤 일은 꿈처럼 이루어졌고, 어떤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했다. 한 사람을 만나 미련하게 사랑했고 쓰라리게 이별했다. 이제 난 무슨 꿈을 꿔야 하는 걸까. 여전히 불안을 곁에 둔 채로, 가끔 작은 창을 연다. 항상 열 수 있어도, 마음은 열기 힘든 창 앞에서 머뭇거린다. 어렵사리 게워낸 글이 적힌 창에, 다음 걸음을 재촉하는 커서가 쉴새 없이 깜빡인다. ‘머무르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가.’ 나는 작은 창 안에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늘과 내일과 어제를 천천히 밀고 나아간다.
때론 접어둔 페이지에 마음이 갔다. 시간이 지나도, 흔적이 남아 쉽게 찾을 수 있다. 보고, 또 보아도 미련이 달라붙었다. 미련이 새겨진 페이지는 애써 찾지 않아도, 저절로 열리곤 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 냄새에서, 걷다가 우연히 들려오는 노랫소리에서, 짧디짧은 글귀 한 소절에서, 어떨 땐 잘근잘근 씹던 무말랭이의 짠맛 속에서도. 스르륵. 한순간 꿈처럼 페이지는 펼쳐졌다.
단정한 구두를 찾고 있었다. 구둣가게들을 돌며 살폈지만, 마음에 드는 구두가 없었다. 구두는 다음으로 미루고, 버스를 탔다. 뒷자리 구석에 앉아 주변을 훑어보며, 가방 지퍼를 조금 열었다. 좁은 틈으로 손을 넣어,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본 돈 봉투의 존재를 확인했다. 한 달 동안 옷가게에서 손님들이 헝클어둔 옷을 개고, 심부름과 청소를 한 대가로 받은 돈이었다. 봉투의 두께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자취방에 오자마자,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할매요. 오늘 아르바이트비 받았는데요. 할매 구두 사러 갔다가 못 골라서 그냥 왔어요. 다음에 같이 가요.”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아이구마 됐데이. 니 필요한 거나 사라. 방학 동안 놀지만 말고 공부도 좀 하고. 내일 바다 놀러 가서 조심히 놀고. 알았제?”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 속에 가쁜 숨소리가 섞였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가슴이 답답해 병원 다녀왔다며 괜찮다고 했다. 별로 괜찮지 않게 들리던 얕고 빠른 호흡 소리. 반복적인 펄럭거림이 내 귓가에 남았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새벽부터 밭에 나가 일했다. 부모가 비운 자리에는, 항상 할머니가 계셨다. 1~3살 터울인 오남매는 별 탈 없이 자랐다. 아이들이 자라 시야를 넓힐 교육이 필요해지자, 할머니는 자취방 지원군으로 나섰다. 약한 심장과 절뚝거리는 왼쪽 다리를 이끌고, 아이들과 함께 낯선 도시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살뜰하게 밥상을 차렸고, 나는 깨작대며 밥을 남겼다. 콩잎김치, 깻잎 조림, 부추김치, 물김치, 콩자반, 무말랭이 같은 시골 반찬이 지겨웠다. 할머니는, 소시지나 햄 같은 반찬은 살 줄 몰랐다. 아들과 며느리가 보내주는 생활비를 아껴 쓰다 보니, 양파를 많이 넣은 돼지고기 주물럭은 단골 메뉴였다. 월세와 전기세, 수도세 같은 세금과 아이들 학비까지. 돈 들어갈 곳은 많았다. 식비를 벌어볼 요량이었을까. 언젠가부터 아침이면, 밤 한 포대가 집 앞에 놓여있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할머니는 방 한가운데 밤 자루를 펼쳐놓고, 밤껍질을 까고 있었다. 때론 밤 자루 대신 마늘 자루가 놓여있기도 했다. 아린 손을 참아내며, 저녁을 준비하던 할머니를, 나는 기억한다.
할머니는 유쾌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나운서가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니, 그녀는 진지하게 ‘내가 더 감사합니다’라고 맞장구쳤다. 들을 때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언니와 오빠가 학교에서 늦게 올 때면, 우린 단짝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고, 화투를 치고, 드라마와 개그 프로를 보며 깔깔댔다. 어쩌다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눈을 뜨면, 어스름한 빛 속에 할머니의 작은 중얼거림이 들리곤 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쪽 다리는 접고, 관절염으로 접을 수 없게 된 다리는 쭉 뻗은 채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옴마니반메훔’을 되풀이하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매일 그녀는 무엇을 빌었을까. 20대에 남편을 잃은 후, 시집에 살며 홀로 아들을 키우고, 말년에 손주들까지 맡게 된 할머니. 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닌, ‘서주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삶은 어땠을까. 어쩌면, ‘옴마니반메훔’은 새벽마다 자신을 다독이는 주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편히 쉴 수 있는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첫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날, 늦게 퇴근한 언니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여행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돈도 두둑하고, 다음날 친구들과 여행 갈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늦은 밤, 좀처럼 울리지 않던 자취방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언니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흐느끼며 울었다. 바라보고 있던, 내 심장은 내려앉았다. “할매가 돌아가셨대.”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온몸이 떨렸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택시를 탔다. 세상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국도변을 달릴 때는 암흑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바로 구두를 사서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할머니가 더 오래 세상에 머무를 수 있었을까. 그녀가 서서히 허물어져 가고 있을 때, 나는 그녀에게 ‘다음’을 얘기했다.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차창 밖을 바라봤다. 유리창에는 슬픔에 갇힌 얼굴 하나가 보였다. 내가 울자, 창에 비친 얼굴이 따라 울었다. 멈추려 해도, 일렁대는 눈동자와 마주치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향집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숨결을 잃은 보랏빛 입술의 할매가 있었다. 대청마루에 퍼질러 앉아 현기증이 날 만큼 눈물을 쏟아냈다. 눈이 따끔거리고 쓰라렸다.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천막이 쳐졌다. 온 집안이 문상객들로 북적댔다. 나는 문상을 따라온, 처음 보는 꼬마에게 밥을 먹였다. 아이는 무슨 일로 여기 왔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반찬만 요구하며 칭얼댔다. 나는 쩔쩔매며,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도대체 난 뭘 하는 건가. 무력감이 들었다. 가족들은 음식을 나르고, 수북이 쌓인 빈 그릇들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은 묵묵히 흘렀다. 흐릿한 시야에 뿌연 사각의 물체가 아른댔다. 흰 천으로 감싸고, 광목 끈으로 동여맨 그녀의 요람이었다.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심장이 저릿저릿했다. 곡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다. 가족들과 장정들이 그녀를 호위하듯 둘러서서 동네 어귀로 천천히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꽃상여가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녀는 아득하게 먼 곳으로 멀어졌고, 그녀와 함께 할 시간도 영원 속으로 흩어졌다.
구두를 봤다.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채로 어울리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굽이 나지막하고 연한 베이지색이라 차분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구두 위에 달린 여러 가닥의 태슬 장식은 자그마했다. 한 사람이 소환되었다. 유난히 까맣던 긴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곱게 빗고, 끝이 길고 뾰족한 빗으로 가르마를 타서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는, 오른쪽 어깨로 늘어뜨려 땋은 후 돌돌 말아 올려 비취색 비녀를 꽂았다. 연한 분홍색 리본 블라우스에 정강이까지 오는 A라인 스커트를 입었다. 진열대의 구두를 신었다. 참했다. 찰나, 내 삶의 기척이 들려왔다. 꿈에서 깨어나듯, 눈은 초점을 다시 찾았다. 언제 어디서든 기다렸다는 듯이 펼쳐지는 ‘할매’라는 존재. 20년이 지나도, 할매는 내게 남았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손으로 낡은 지갑의 구석구석을 뒤적였다. 직원은 가만히 기다렸다.
노인은 더 내놓을 것이 없는지 지갑만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렸다.)
직원: 다음에 오실래요? 아니면 나머지 약 값은 집에 가셔서 계좌이체 해주실래요?
노인: 남은 돈이 얼마라고요?
직원: 카드와 현금 20,000까지 다 하면, 35,900원이 남아요.
(약국 직원은 계좌번호와 약값을 종이에 크게 적어 노인에게 내밀었다. 노인은 종이를 접어 지갑에 밀어 넣었다.)
약국에서 약을 기다리던 모든 이들이 노인을 지켜봤다. 주변 공기가 흐르지 않고 머물러있는 듯이 답답했다. 나도 아버지와 함께 약을 기다리다가, 낯선 노인의 상황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마스크 안에 갇힌 듯 조용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할 수밖에 없기에 흔들리는 눈빛들. 어느 누구도 선뜻 행동하진 않았다. 누군가 나타나길 바라며 두리번댈 뿐이었다. 만약 내가 노인의 약값을 대신 계산한다면, 노인은 내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알량한 선행이 도움이 될까, 해가 될까. 나는 그를 모른다. 그는 희끗희끗한 머리칼, 구부정한 등, 마스크의 빈틈으로 보이는 검버섯과 굵게 패인 주름살, 떨리는 손과 어눌한 말, 빈 지갑만을 내게 보여줬을 뿐이다. 노인의 과거도 미래도 알 수 없다. 단지, 내 시점에서 바라본 상황이 아팠다. 자신의 지갑을 뒤집어도 약값을 지불하기 힘든 삶은, 행복과는 멀게 느껴졌으니까.
약 바구니가 조제실에서 계속 나왔다. 3명의 약사들은 바구니 속에 둘둘 말아져 있는 조제약들을 쭉 펼쳐서, 약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하나하나 확인한 후, 약 주인을 불렀다. “아버지, 저 약들 봐요. 다들 약이 얼마나 많은지. 아버지도 많죠?” “밥 먹듯이 약 먹지. 아침, 점심, 저녁, 자기 전에. 그것만 먹어도 배부를 걸. 요즘은 약이 좋아서, 나이 들어도 쉽게 죽지도 않아.” 약은 끊임없이 나왔고, 약을 가져갈 사람은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종합병원 앞이라서 약 뭉치가 크다. 한 달 또는 두 달 치의 장기간 복용할 약이 대부분이다. 아마 몇 년 동안 같은 약을 복용 중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떤 중년의 여자가 약을 받으며 말했다. “이쪽이 아버지 약이고, 이쪽이 어머니 약이에요?” 부모가 오시기 힘드니까, 약을 대리로 처방받은 듯했다. 여자는 빵빵한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받아들고 약국을 나갔다. 약봉지를 전해 받은 고령의 부모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봉지를 뜯어 입안에 털어 넣을 것이다. 중년의 딸은, 부모가 덜 아프고 더 오래 사시게 약 배달을 계속하지 않을까.
몇 년 전부터, 아버지는 혼자 종합병원 가는 것을 힘들어하셨다. 의사나 간호사, 약사가 하는 말을 알아듣기 힘들고, 큰 규모의 건물에 주차하고 진료과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 사는 나와 동행하곤 했다. 진료를 보고 나면, 대체로 한 달 치 약을 처방받았다. 불편한 채로 만성이 되어버린 곳은 쉽게 낫지 않아서, 꾸준히 약을 먹는 수밖에 없다. 약사가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아버지는 이번부터 두 달 치 약을 받았다. 좋게 보면, 약이 조금은 효험이 있다는 얘기다. 약사에게 약 복용 설명을 들었다. 아버지는 먹던 약이라 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먹고 온 약은 잘게 부서져서 아버지의 저릿한 발바닥 주위를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불룩하지만 가벼운, 검은 비닐봉지를 받아들고 약국을 나섰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손에도 검은 비닐봉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봉지 안에 든 약들은 한 인간의 살아온 궤적을 말해주기도 한다. 부서지고, 눌리고, 굳어버린 몸과 마음을 도와줄, 처방전대로 조제되었을 테니까. 사람마다 증상이 다양하고, 아픈 부위도 다르다. 어떤 이는 혈관, 어떤 이는 심장, 어떤 이는 척추, 어떤 이는 장기, 어떤 이는 불안과 수면장애…. 오래 방치하면 할수록 완치는 쉽지 않다. 더 나빠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다. 때론 순간의 고통을 진통제와 신경안정제에 의지해 버티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약은 생존의 양식 같다. 밥처럼 매일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꼬박꼬박 먹어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어떤 이는 삶을 탈탈 털어 비싼 약값을 치르고, 약을 먹고 다시 삶을 이어나간다. 반복적인 패턴에서 약간만 빗나가도,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손톱보다 작은 알약 하나가, 어떤 이에게는 절실하다. 흔들리던 검은 비닐봉지가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어딘가에서 삶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수필오디세이 봄호(2021)에 발표했던 글이, <THE수필> spring에 다시 실렸다. 많은 수필문예지에서 발표된 글 중에 심사를 통해 60편이 채택되었다고 했다. 감사하면서도 무겁다. 쓰며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곤 한다. 이번도 그렇다. 글 한 편이 피어나 열매를 맺고, 조그만 씨앗이 바람을 따라 떠돌다 새로운 곳에서 싹을 틔웠나보다. 글운이 좋았다.
'전등'은 가라앉으려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싶은 열망의 글인지도 모른다. '죽음'을 보고 겪은 후엔, 다시 원래의 삶으로 되돌릴 순 없었다. 단지 하루하루 노력할 뿐. 수필을 발표할 때마다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다. 내가 보이는 글이기에 부담이 된다. 고민도 여전하다. 내 삶에서 나온 글이 문학이 될 수 있을까. 문학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하고 싶은 걸까.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지 알 수 없다. 글을 쓰다가도, 나를 의심한다. The수필은 의심하지 말고, 뭐든 쓰라고 하는 것만 같다.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 굳건히 인정받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다. 우선, 문학예술로서의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학성과 철학성을 미적 울림의 동력으로 체계화하는 보편적인 작법(시학)을 정립해야 한다. 수필의 고유한 전통을 계승하면서 수필만의 독특한 미적 영토를 지켜주는 것이 정체성이라면, 시학은 그 정체성의 토대 위에서 문학예술로서의 창조전략을 미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필작가와 연구자들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21세기 한국 현대수필의 질적 상황도 20세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미학성과 철학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야기만 무성한 작품들이 적지 않고, 수필이 소설이나 시 등의 타 장르와 무엇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를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부실한 창작교육과 기준 없는 등단제도, 그리고 빈약한 비평 풍토 등 몇 가지 측면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수필 평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적지 않다. 한국의 어떤 수필 평문들은 대체로 텍스트가 왜 감동을 주고, 주지 못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미학적 분석과 평가보다는 칭찬 위주의 상식적 해설이나 감상에 치우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 땅의 수필 문학이 정체를 보이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고도 남는다. 비평이 작품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나 논리적 평가보다는 상투적 해설 중심으로 흐를 경우, 수필 문학의 질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수필 문단에 평문을 쓰는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여 평론가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문학과 미학 이론에 대한 체계적 연구나 작품현장에 대한 폭넓은 경험 없이 문장력만으로 뛰어든 일부 평자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문단 상황 속에서 평자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확실하다. ‘붓 가는 대로 쓰는’식의, 이른바 비예술적인 산문을 가려내어 문제점을 비판 제시하고, 반면에 미적 울림과 철학성을 조화롭게 함유한 문학 예술적 가치를 지닌 수필 텍스트를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안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문학적이고 미학적인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과정과 평가 결과를 반드시 함께 제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바람직한 창작의 길로 이끌고 컨설팅해주는 노력과 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본지에 연재형식으로 다루고 있는 ‘예술수필의 조건과 제시’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비평적 컨설팅을 목표로 한다. 이번에는 『수필오디세이』 5호에서 가려 뽑은 정은아의 수작 「전등」을 텍스트로 삼았다.
2. 「전등」의 의미구조 분석
1)텍스트의 패러프레이즈
이 수필 텍스트는 10개 문단으로 조직되었다. 함축적이고 개성 있는 문장과 성찰의 서술전략이 돋보이는 이 텍스트는 기발한 라이트모티프를 패턴으로 활용하여 주제를 효율적으로 형상화한다. 그 밖에도 객관적 상관물과 콜라주, 상호텍스트성 등의 도움을 받아 신비롭고도 특이한 소재를 영적 커뮤니케이션의 상황으로 흥미롭게 작품화한다. 이 텍스트의 단락들이 함유한 의미와 기능을 패러프레이즈 하면 다음과 같다.
①생이 다시 빛나길 무작정 기다릴 수 없음(재기 욕망 소생). ②아이와 병원문 나설 때 동시에 불이 꺼져 울컥함(죽은 남편 원망). ③아이를 업으며 식은 땀과 눈물을 흘림(아이근심). ④집 안팎 사물이 남편의 신호로 넘침(남편 영적 현시). ⑤새집의 센서등이 켜질 때마다 남편 떠오름(새집 영적 현시). ⑥영화 속 여자 모습에서 내 모습 발견함(객관적 상관물 발견). ⑦영화 속 죽은 아이의 영적 방문과 고백(영적 소통 콜라주). ⑧전등은 남편 마음을 표현하는 매개체임(마음 표현매체 인식). ⑨남편을 놓아주고 삶을 되찾아야 했음(소생 방법 탐구). ⑩전등 강박에서 벗어나 삶의 빛을 봄(남편 죽음 극복).
이상의 요약을 바탕으로 의미구조의 흐름을 살피면, ①변화조짐-②분리단계-③분리단계-④분리단계-⑤분리단계-⑥분리단계-⑦분리단계-⑧변환조짐-⑨변환단계-⑩통합단계로 정리된다. 이제, 이 자료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에 들어갈 차례이다.
2)텍스트의 구조와 서술전략
수필 문학에서 텍스트의 의미작용과 미적 울림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크게 소재 통찰과 이야기의 미적 배열구조와 기법, 그리고 서술과 수사전략 등을 유기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따라서 소재를 어느 깊이까지 통찰했는지, 이야기의 통찰 재료들을 어떻게 구조화했는지, 그리고 그 구조에 담긴 이야기들을 어떤 서술과 수사전략으로 형상화했는지 등을 살피는 것은 작품의 의미는 물론 문학성과 예술성을 판단하는 기본적인 근거가 된다.
①소재 통찰의 수준
소재 인식의 차원에서, 먼저 작가는 죽은 남편의 혼령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영적 인식의 문턱쯤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작가의 소통이 깊은 몰입의 결과인지, 아니면 감성적인 염력의 산물이나 작가 단독으로 시도한 상상 행위인지에 관해서는 확인이 불가하다. 하지만, 단락 ⑥,⑦에서 영화 생일에 삽입한 개연적인 시를 통해서 영적 소통의 가능성이나 진실을 동기화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문제는 작가가 어떤 개연성도 없이 일어나는 전등의 깜빡임과 전기 오작동, 교차로 전등의 꺼짐과 현관 전등의 켜짐이 죽은 ‘남편이 보내는 신호’라고 믿었다는 데 있다. 작가에게 발생하는 이런 특별한 영적 사건은 비록 주관적일 수 있으나, 그러한 현상을 사별한 남편의 영적 현시의 신호로 믿고 싶어 했다는 데 진실이 숨어있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고백한 일련의 사건들은 현실적인 실현 가능 여부를 떠나 죽은 남편의 혼령을 상대로 경험한 사실이라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사자의 영혼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사랑했던 부부간에는 영적 염력이 작용할 수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런 심리 현상을 작가가 실제로 경험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심령과학적 차원에서라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 절실한 상황을 심리적 착시 현상과 같은 과학의 논리로만 설명하기엔 아쉬움이 크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개연성 있는 우주 의식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비슷한 이야기인 영화 『생일』에 삽입된 시 「엄마, 나야」의 일부를 콜라주 한 것이리라.
②미적 배열구조
앞서 제시한 패러프레이즈를 통해서 이 텍스트의 이야기 조직원리는 통과제의의 의미생성구조인 ‘분리단계→변환단계→통합단계’를 거치면서 주제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즉, 이 텍스트는 ①변환조짐→②~⑦분리단계→⑧변환조짐단계→⑨변환단계→⑩통합이입 단계로 이야기의 의미가 흐르면서 주제를 완성한다. 그러므로 통과제의 구조의 단계별 이야기 배분 비율은 분리단계 : 변환단계 : 통합단계가 6 : 3 : 1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 텍스트가 분리단계의 이야기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는 대신, 남편 상실의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최소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텍스트의 주제수렴을 위한 논리적 틀인 로고스 또는 통과제의 형식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과제의는 개개인의 인간들이 인생의 고비에서 겪게 되는 보편적인 의례와 그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설명하는 정신 구조의 틀이다. 예컨대, 반 겐넵에 따르면, 인간은 출생, 아동기, 사회적 사춘기, 약혼, 결혼, 임신, 아버지 되기, 종교단체 입회, 상층 계급으로의 이동, 직업적 전문화, 죽음, 장례식 등에서 유사한 보편적인 의례를 치르고, 그에 따른 의식의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텍스트를 통과제의적 고통과 극복의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감전 사고로 발생한 충격적 죽음과 그 사건이 안겨준 고통과 상실 체험을 극복하고 다시 생의 현실로 돌아온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③기법과 미적 장치
이 텍스트에서 작가는 패턴과 객관적 상관물, 라이트모티프, 콜라주, 파라독스, 상호텍스트성 등의 기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기법은 주제와 의미를 효율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도록 도와주는 요소들이다. 특히, 수필처럼 짧은 산문에서 작가의 철학이나 미학, 심리 등을 기능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전깃불 패턴은 작가가 병원의 전등(②)과 교차로 신호기(④), 현관 전등(⑤)의 깜빡임과 오작동 현상을 우연히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죽은 남편이 보내는 신호로 믿게 하는 원인이 된다. 여기서 패턴은 믿을 수 없는 남편과의 사별 충격과 그로 인한 심리적 원망, 서러움, 불안, 좌절감 등을 겪게 한다. 이것은 작가의 고백처럼 죽은 남편을 자신의 삶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싶은 심리적 욕망의 반영일 수도 있다. “집안에 들어서면, 모든 사물이 온통 그로 넘쳤다”라고 하는 진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혼잣말 패턴은 죽은 남편의 혼령을 상대로 혼자 중얼거리는 영적 대화이다. 그런 행위는 여기저기서 센서등이 오작동할 때마다 그것을 남편이 보내는 신호로 인식하고 있다는 심리적 근거이다. 이를테면, 병원에서 아이를 업고는 “보고 있는 거야? 애 낳고 한 달도 안 된 산모가 보이긴 해?”라고 추궁하거나, 병원문 앞에서 전구가 동시에 꺼지자, “아이가 아프다니, 궁금하긴 했나 봐. 집을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우리가 걱정되긴 한가 봐.”라고 중얼댄다. 또 교차로의 모든 신호가 꺼지자 “당신이지?”라는 영적 추궁을 패턴 형식으로 던진다.
객관적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은 영화 『생일』속에 삽입된 시 「엄마, 나야」이다. 영화 속에서 이 시는 죽은 아이가 어머니를 찾아와 영적 대화를 시도하고, 이 텍스트 속에서는 작가가 죽은 남편을 향해 영적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니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영화 속의 시적 상황은 이 작품과 인물 간의 역할은 바뀌었으나, 작가가 처한 영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정서적 등가물로 충분하다. T. S. 엘리엇의 말처럼, 텍스트 속에서 이 시는 작가의 특수한 정서와 심리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공식처럼 효용성을 발휘한다.
라이트모티프Leitmotif는 주제의식을 이끄는 핵심 기법이라는 점에서 주도 모티프, 혹은 인도 모티프로 불린다. 이 텍스트 속에서는 전등들(센서등, 교차로 신호등)이 그 기능을 수행한다. 전등의 꺼짐과 켜짐은 죽은 남편과 작가 사이에서 영적 커뮤니케이션의 동기와 신호로 활용하면서 주제를 형상화하는데 중요한 인도 기능을 수행한다.
콜라주는 영화 『생일』에 나오는 시 「엄마, 나야」를 부분 인용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문학에서의 콜라주는 원작 내용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 일부, 혹은 전체를 끌어들이는 기법이다. 이것은 작가가 처한 영적 심리적 상황을 유사한 등가물로 제시함으로써 보다 알기 쉽게 전달하고, 문학적 울림을 배가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 생일은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이 영화는 본 수필작품보다 먼저 제작 상영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어떤 창작 동기나 예술성의 창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텍스트는 독창적으로 창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전 텍스트와 후 텍스트 사이에서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면서 창조되기 때문이다.
④서술과 수사전략
작가는 자신의 내면 심리를 효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특별한 서술전략을 사용한다. 예컨대, 영적 대화의 패턴과 성찰을 통한 이별의 슬픔을 극대화하기, 여백을 이용한 견딤과 극복 심리의 형상화, 그리고 역설의 전략 등이다.
이 작품에서 성찰의 언술은 수필의 고백적 본성을 보여주는 서술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성찰은 서술 화자(작가)가 직접 자신의 마음 속 생각(사유)이나 느낌, 감정, 비판, 해석, 질문, 깨달음 등을 들려주는 서술법으로 작가의 내면세계를 파악하고 알아차리게 도와주는 효과적인 언술 방식이다. 특히, 수필의 성찰 기법은 작가가 자신의 내면 심리나 심리적 정황 등을 고백하기에 유리하고, 사실성과 호소력도 높여준다.
성찰은 수필작가(주체)의 은밀한 내적 발화 방식이다. 따라서 단순 정보 전달방식인 설명이나 대상(객체)중심 서술기법인 묘사와도 구별된다. 수필의 성찰은 작가의 마음 속 생각이나 내면세계를 문학적 수사를 동원하여 들려주는 대표적인 고백 형식이다.
이 텍스트 속에서 성찰은 갑자기 사별한 남편의 혼령과 이승에 남아있는 작가가 불안, 좌절, 당혹감에 떨며 영적 소통을 시도하는 흥미로운 광경을 담아낸다. 이 작품의 성찰 기법은 서술 방법 차원에서 특별한 전략적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사자와의 주관적인 영적 대화를 효율적으로 중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단락②의 “보고 있는 거야? 애 낳고 한 달도 안 된 산모가 보이긴 해?”, “아이가 아프다니, 궁금하긴 했나 봐. 집을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우리가 걱정되긴 한가 봐”나, 단락④에서 “당신이지?”처럼 영적 수준에서의 은밀한 혼잣말Self talking을 중계하기에 제격이다.
둘째, 성찰은 사자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작가의 심리와 안타까움을 효율적으로 고백하는 도구이다.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단순한 정전이 아니라고. 전류로 인한 남편의 죽음이 전류 속에 녹아 온 세상에 흐르는 거라고. 내 마음이 나를 옭아매고 흔들었다. 원망과 미안함과 서러움, 혹은 분노, 불안, 좌절이 공존했다. (중략) 그 후로는 전등의 깜빡임과 전기 오작동이, 남편이 내게 보내는 신호라 믿었다.” 이러한 성찰의 문장은 작가의 내면 심리를 효율적으로 고백하는 도구이자, 진실한 내면의 소리를 진실하고 설득력 있게 들려주는 방법이다.
단락 사이의 공간적 여백 사용도 기능적이다. 한 단락의 끝에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는 한 줄짜리 건너뜀의 여백들은 슬픔의 깊이와 아픔을 성찰하거나 누적시키는 침묵의 사유 공간이다. 외형적으로는 서술이 부재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생략된 서술이 존재하므로 독자는 여백에 숨겨놓은 침묵의 의미와 효과에 신경을 쓰게 된다. 화가 이우환에 따르면, 여백이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관계 작용의 다이내믹한 초월 공간이다. 즉, 큰 북을 치면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지는데, 그때 큰 북을 포함한 바이브레이션의 생성 공간이 여백이다. 예컨대, 그린 부분과 그리지 않은 부분, 내부와 외부가 상호작용하여 울려 퍼지는 초월적 앙양의 공간이다.
그런 논리에서 보면, 이 텍스트의 여백은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으로 발생한 현실적 고통과 그에 따른 심리적 변화와 영적인 적응과정을 암시하는 견딤과 극복의 시공간이다. 따라서 이 텍스트에 담겨있는 10개의 단락은 몽타주로서의 형식적 의미를 지닌다. 각각의 몽타주 사이의 여백은 앞 단락과 뒤 단락의 관계적 의미 작용과 슬픔의 울림을 상호 침투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살아있는 자와 갑작스레 죽은 자의 영적 만남을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울림으로 극대화한다.
짧고 간경한 파라독스 문장도 빛을 내뿜는다. 단락④의 끝부분에서 발견되는 “그는 보이지 않는데, 왠지 그가 보였다.”라는 진술은 바로 앞의 “어쩌면 내 삶 속으로 그를 다시 끌어들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을 인과적으로 뒷받침한다. 이들 문장에 함축된 의미는 아직 작가의 마음 속에 그가 살아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작가의 심리가 갑작스럽게 이승을 떠난 남편의 혼령에게 영적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만든다. 그래서 짧고 함축적인 역설의 문장은 남편과의 충격적인 사별이 가져다준 심리적 좌절감을 극대화하여 비극적 울림을 생성하는 동력이 된다.
3. 비평적 컨설팅
이제, 비평적 컨설팅을 통해서 작품의 미적 울림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차례이다. 모든 작품은 미학적으로 완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평적 컨설팅은 효율적인 창작을 돕는 객관적이고 보완적인 방법이나 기법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제안1은 이야기 배열방식에 대한 문제이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 순서에 따라 서술하는 연대기적 배열방식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이야기라도 배열방식에 따라 설득력과 감동의 힘이 다르듯이, 문학적 이야기의 배열방식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하고, 주제와 의미를 효율적으로 형상화하며, 미적 울림을 극대화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것은 작가의 의무이자, 모든 문학 예술 작품이 요구하는 보편적인 미적 창작의 원리이다.
방법(1)은 이중액자를 사용하는 방안이다. 먼저 단락⑨를 도입 액자에, 단락⑩을 종결액자에 설치한 후, 나머지 이야기를 내부이야기로 삽입하는 방식이다. 방법(2)는 이중액자를 설치한 뒤에 센서등 이야기와 영화 『생일』의 시를 교차나 교착시켜 배열하는 방식이다. 전자의 경우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조화함으로써 미적 울림을 강화해주고, 후자는 비슷한 상황의 두 이야기를 비교하여 읽게 함으로써 작가가 처한 비극적 슬픔과 안타까운 감정이 시너지 작용을 일으켜 미적 울림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주제와 의미, 미적 울림의 형상화 전략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미적 배열방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상고할 만하다. 그리고 이야기 배열구조는 단순한 소재 차원의 이야기를 예술성이 풍부한 문학적 이야기로 변신시키는 핵심원리를 낳게 한다는 점에서 작가들에게 끊임없는 창의적 실험과 발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방법(3)은 영화 『생일』 이야기의 ‘시’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약간의 서술을 섞어 『생일』 이야기 속의 ‘시’를 도입액자와 종결액자에 삽입하여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이 시는 작가의 이야기를 도입하기 위한 동기부여의 한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주제를 암시하는 사건의 기능을 수행하여 미적 울림을 증진하는 방법도 될 것이다. 그 외도 다양한 배열방식이 존재할 수 있지만 지면 관계로 줄인다.
제안2는 주제 심화의 차원에서 철학성을 집어넣는 방법에 대한 고려이다. 우선, 이 텍스트는 감전 사고로 발생한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그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좌절감 속에서 남편 상실의 비극적 상황을 극복해가는 이야기라는 점을 숙고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 속에서 남편 상실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동기이자 사건의 실마리가 된 죽음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가를 깊은 철학적 인식이나 영적 깨달음의 형식으로 들려주면 한층 더 깊은 울림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남편의 죽음에 대한 몰입 통찰은 필수적이다.
제안3은 콜라주의 활용법이다. 영화 『생일』 속의 ‘시’ 콜라주는 본 이야기의 의미와 미적 울림을 창조하는데 시너지 작용을 할 소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텍스트에 배열된 서술상의 위치가 어색하고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앞에서 제안한 것처럼 시 내용을 적절히 분절하여 도입액자와 종결액자에 쓰거나, 시 원문을 모두 인용하여 교차나 교착법의 한 스토리로 사용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 시는 상상력으로 쓴 허구적인 작품이지만 개연성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실제 체험에 대한 리얼리티를 강화해줌은 물론, 슬픔의 정서를 배가 시켜줄 것이 자명하다.
제안4는 남편의 부재와 상실이라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극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주지 않고, 암시적으로 처리한 부분에 관한 아쉬움과 그에 따른 보완 방안이다. 작가는 마땅히 남편의 갑작스러운 상실과 부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과정과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략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체득하고 문제의 해결을 획득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극적인 극한 상황의 극복과정과 방법에 관한 서술은 긴요하다. 흔히, 작가의 인생에서 모든 과정과 방법은 삶의 중요한 구성요소일 뿐만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며 체득한 철학적 깨달음의 동인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시련과 극복과정에 관한 생략의 아쉬움은 전체 텍스트의 의미구조를 통과의례로 해석할 때도 발생한다. 즉 분리단계의 이야기 분량이 충분하지만, 변환단계와 통합단계는 다소 서술이 빈약하여 현실 세계로의 이입 과정을 보여주는데 불충분한 느낌이다. 작품 구조의 차원에서도 변환단계를 거쳐 통합 단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깨달음을 통한 작가의 성숙과 미적 완결성을 보여주는 미적 근거가 된다.
4. 한국수필의 미래를 위해
한국 현대수필이 질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종사자들이 힘을 모아야한다. 작가와 비평가, 교육자와 잡지운영자에 이르기까지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과 임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만큼 관련 종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좋은 수필은 한마디로 문학성과 철학성이 조화된 개성 있고 울림이 큰 작품이다. 그것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범한 산문이 아니라, 시와 소설로는 다룰 수 없는 독자적인 작가의 세계를 들려주는 이야기다. 소설을 흉내 내거나 시를 모방할 필요도 없다. 수필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면서 수필의 고유한 맛과 멋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지향해야 한다. 이제는 근거 없는 비논리로 수필을 왜곡하거나, 실험수필 운운하며 미학성이나 철학성이 없는 작품을 양산하는 것도 곤란하다. 수필도 엄연한 문학예술인 이상 미학성과 철학성은 좋은 수필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들도 칭찬이나 해설 위주의 평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보다는 작가들에게 주어진 텍스트에 관한 과학적인 건전한 비판과 함께 미적 울림이 좋은 작품을 창조하는 논리적이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안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미학적인 이론을 기반으로 문제점과 해결책을 함께 제시하고 조언하는 컨설팅 중심의 비평작엄이 필요하다. 그래서 작가와 비평가가 작품의 미학성과 완결성을 놓고 토론을 벌이며 바람직한 창작의 길을 모색하는 상호보완적 노력이 필요하다.
독자들이 질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골라 읽을 수 있도록 평자들이 객관적인 기준과 조언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형서점이나 출판사가 선정한 베스트셀러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현실에서는 평자나 학자들이 바람직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독자들과 함께 텍스트를 읽고 가려 뽑는 객관적인 토론과 평가의 자리도 필요하다.
수필가를 양성하는 교육자와 그들을 등단시켜 작가의 길을 터주는 잡지사 운영자들도 수필 문단이 바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역량 미달의 작가를 양산해야 하는 경영상의 문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한국수필 문단의 미래를 위해 역량 있는 작가를 양성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과 깊이 있는 질적 교육이 절실하다. 그리고 잡지사는 비록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능력이 미진한 사람을 데뷔시키는 일은 삼가야 한다.
이런 노력이 꽃을 피울 때, 이 땅의 수필 문학은 제 4장르로서의 문학적 가치와 미학을 구현하며 21세기를 선도하는 건강한 장르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다.
9시.창을 열었다.파랗다.온통 시퍼렇다.얼마나 떨어졌을까.가장 많이 떨어진 놈을 골라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대체로 긍정적이다.하락의 이유를 알 수 없다.그저 장이 좋지 않다.내 속도 좋지 않다.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모르면,공부를 해야 한다.언제나 공부는 쉽지 않다.무작정 먹잇감을 찾으려고 달려든다.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마음을 가라앉히고,하나씩 차트를 들여다봤다.파란 선이 엘리베이터 타듯이 쭉쭉 내려왔다.어떤 것은 파란 막대가 길게 세워졌다.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내 창고에는 차곡차곡 마이너스가 쌓였다.진정한 투자 사냥꾼들은 파란 날 바쁘다는데,난 이미 총알이 떨어졌다.탐나는 주식들이 쏟아져 나와도 그저 침만 흘린다.좀 부족해도 그리 나쁜 건 없지만,풍족하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부富는 부富를 증폭시킬 기회가 많다.부동산에서도 그랬듯이,주식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발생 시기와 맞물려 개미들이 주식장으로 몰려들었다.주식 열풍이다.모이면 주식 얘기다.안부는‘주식 어때?’로 바뀐 듯했다.실업이 늘어나도 주식 장은 좋단다.남의 얘기 같았다.주식 광풍은 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주식을 안 하니,대화에 끼지 못했다.궁금했다.코스피가 한창 치솟은 때,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주식 세계에 발을 들였다.처음 맛은 달콤했다.창을 열면 온통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잠깐이었지만,아름다운 풍경이었다.조금 지나자,장 조정이 들어갈 거라고 했다.작년에 모든 주식이 너무 올랐단다.내가 최고점에 뛰어들어 옥상에서 놀고 있는 동안,점차 쭉쭉 하락하더니,지하로 떨어졌다.빨갛던 부분이 파랗게 변할 때면,조급해졌다.존버(비속어인 존*+버티다의 합성어를 줄인 말)하던가,손절(손해를 감수하고 팔기)해야 한다.
나는‘주린이(주식+어린이)’면서‘개미’다.주린이에게 매수와 매도는 감感이다.하락장에서 몇 개라도 주워두면,조만간 탐나는 주식이 될 것 같다.지금은 퍼렇지만,탐스러운 사과처럼 빨갛게 익지 않을까.조바심이 났다.또 떨어졌다.빨리 줍지 않고 기다린 내가 대견했다.움찔움찔한다.매수 시점을 알지 못한다.마냥 기다리기만 하면,저점에 있던 주식이 슬금슬금 고점을 향해 나아간다.매도 시점도 모르겠다.빨갛게 바뀌어서 어느 정도 수익이 나서 매도하면,그 후로 멈추질 않고 떡상(어떤 수치 등이 급격하게 오르는 것)한다.난 감感도 없다.수익을 내고도 마음이 쓰리다.이래도 저래도 힘들다.왜 하지?저금리 코로나 시대에,방구석에서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합법적 투자라 그런가.누군가 그러더라.땅을 파도100원을 얻기 힘든데,주식을 파면 커피 값이라도 벌고,어떨 땐 치킨 값까지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물론 투자를 잘해야 가능한 얘기다.어떤 이는 인생을 걸듯이 빚내서 투자하고,그것으로도 모자라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를 한단다.나도 지금,영혼은 팔릴 것 같다.정신 똑바로 차리고,여윳돈 외에는 손대면 안 된다.
10시에는 거래량이 점점 늘어났다.피크타임이다.어떤 것은 빨갛게 변했다.그래도 거의 파랗다.어제 빨간색일 때 팔려다가,더 오를 것 같아 뒀더니 떡락(갑작스러운 하락세를 강조해서 부르는 말)이다.사람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적정한 선에서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장기투자는 옛말이다.개미들은 바쁘다.오래 머무르지 않는다.후다닥 사고 후다닥 판다.단타가 대세다.오후 장을 기대하며 창을 닫았다.
12시.궁금해서 잠시 열었다.역시나 파랗다.빨간색이 그립다.빨간색을 이다지도 좋아했던 때가 있었던가.내 기억으로는 없다.요즘은 왠지 산뜻한 빨강이 좋다.관심 분야도 바뀌었다.신문을 볼 때 사설 위주로 보곤 했는데,주식을 하고 나서는 잘 보지 않던 경제 파트를 제일 먼저 찾아 읽었다.반도체,바이오 뉴스가 많아 관련 테마주에 관심이 쏠렸다.소비 패턴도 주식을 따라갔다.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제품에 정이 가고,구매로 이어졌다.이미 내가 쓰고 있는 제품 중 괜찮은 것은 어떤 기업에서 생산하는지 찾아보기도 했다.물론 주식을 팔고 나면,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무슨 책을 읽는지 보면,그 사람이 관심 가지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문학 관련 책들만 읽던 내가,며칠 전에 주식 책 한 권을 기어이 사고 말았다.
2시.점점 개미들이 몰려들었다.창이 조금씩 일렁이더니,서서히 움직임이 빨라졌다.장 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개미는 열심히 움직이지만,개미만으로는 주식을 구해내긴 힘들다.작년에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에 맞서서 주식을 구해냈던‘동학개미’는‘서학개미(해외주식 개인투자자)’, ‘코인개미(비트코인 개인투자자)’로 흩어져 개미의 움직임은 한계가 있다.거물(기관+외국인 투자자)이 나타나면,움직임은 가속화된다.개미는 먹이를 줍기 위해 애쓰다가 점점 위로 끌려간다.한참 끌려가다 보면 번뜩 정신이 든다.이 주식을 꼭 먹어야 하나.후회해도 소용없다.빨갛게 달아오르던 창이 찬물을 퍼부은 듯 다시 파랗다.다시 되돌리려 해도,정상에 우뚝 서 있다.꼭대기에서 내려가려면 한참 걸린다.언젠가 구조되리라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장기 투숙한다.구조대를 기다리며,수분 보충을 잊지 않으면(물타기:매입한 주식의 가격이 하락할 때 주식을 추가로 매입해 평균매입단가를 낮추는 행위)더 빨리 구조대를 만날 수도 있다.
3시20분.막장에 다다른 장은 표면적으로는 고요하다.주식장이10분 동안 멈춘 듯 보여도,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발을 움직이는 백조처럼,개미들은 격렬한 클릭을 하고 있을 것이다.나는 조용히 주식 창을 닫았다.그리고는 밀려오는 허무와 단타의 한계를 느낀다.시간도 잃은 것 같다.조각난 시간을 이어붙이면,책을100장은 넘게 읽고도 남았을 시간이다.주식과 함께 평일이 지나가고 주말이 오면,개미는 잡념 없이 편하게 쉴 수 있다.주말에는 주식 장을 볼 일이 없으니까.
개미에게 주식투자는 뭘까. 은행 금리 1%대에 실망한 이들에게는 끌리는 투자처다. 주식으로 500% 수익을 냈다는 소문까지 떠돌아다니니, 마음이 들썩인다. 물론 내 주변에서는 고수익자를 보진 못했다. 모두가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누군가는 돈을 잃는다.무리한 투자와 허황된 기대감은 탈이 나기 쉽다.주식장에 입성한 지2개월 된 나는,주식이 게임 같다.소액의 여윳돈으로 용돈 버는 재미랄까.수익이 없는 날도 많지만,주식이 내려가도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몰라도,언젠가 오를 거니까.주식 투자에 맛 들인,정보에 민감한 개미들은‘코인’을 캐러 이동 중이다.급락과 급등이 수시로 벌어지는 비트코인은 한탕주의 도박처럼 불안하다.코인개미의 행렬을 따라가기엔 내 자산도,멘탈도,지식도 약하다.일론 머스크(테슬라CEO)보다 재산이 적다면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말라는 빌 게이츠의 말이 왠지 공감된다.나는 주식도 잘 모르는 한낱 개미다.그저,내일 아침은 빨간 창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