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접어둔 페이지에 마음이 갔다. 시간이 지나도, 흔적이 남아 쉽게 찾을 수 있다. 보고, 또 보아도 미련이 달라붙었다. 미련이 새겨진 페이지는 애써 찾지 않아도, 저절로 열리곤 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 냄새에서, 걷다가 우연히 들려오는 노랫소리에서, 짧디짧은 글귀 한 소절에서, 어떨 땐 잘근잘근 씹던 무말랭이의 짠맛 속에서도. 스르륵. 한순간 꿈처럼 페이지는 펼쳐졌다.
단정한 구두를 찾고 있었다. 구둣가게들을 돌며 살폈지만, 마음에 드는 구두가 없었다. 구두는 다음으로 미루고, 버스를 탔다. 뒷자리 구석에 앉아 주변을 훑어보며, 가방 지퍼를 조금 열었다. 좁은 틈으로 손을 넣어,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본 돈 봉투의 존재를 확인했다. 한 달 동안 옷가게에서 손님들이 헝클어둔 옷을 개고, 심부름과 청소를 한 대가로 받은 돈이었다. 봉투의 두께감에 마음이 부풀었다. 자취방에 오자마자,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할매요. 오늘 아르바이트비 받았는데요. 할매 구두 사러 갔다가 못 골라서 그냥 왔어요. 다음에 같이 가요.”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아이구마 됐데이. 니 필요한 거나 사라. 방학 동안 놀지만 말고 공부도 좀 하고. 내일 바다 놀러 가서 조심히 놀고. 알았제?”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 속에 가쁜 숨소리가 섞였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가슴이 답답해 병원 다녀왔다며 괜찮다고 했다. 별로 괜찮지 않게 들리던 얕고 빠른 호흡 소리. 반복적인 펄럭거림이 내 귓가에 남았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새벽부터 밭에 나가 일했다. 부모가 비운 자리에는, 항상 할머니가 계셨다. 1~3살 터울인 오남매는 별 탈 없이 자랐다. 아이들이 자라 시야를 넓힐 교육이 필요해지자, 할머니는 자취방 지원군으로 나섰다. 약한 심장과 절뚝거리는 왼쪽 다리를 이끌고, 아이들과 함께 낯선 도시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살뜰하게 밥상을 차렸고, 나는 깨작대며 밥을 남겼다. 콩잎김치, 깻잎 조림, 부추김치, 물김치, 콩자반, 무말랭이 같은 시골 반찬이 지겨웠다. 할머니는, 소시지나 햄 같은 반찬은 살 줄 몰랐다. 아들과 며느리가 보내주는 생활비를 아껴 쓰다 보니, 양파를 많이 넣은 돼지고기 주물럭은 단골 메뉴였다. 월세와 전기세, 수도세 같은 세금과 아이들 학비까지. 돈 들어갈 곳은 많았다. 식비를 벌어볼 요량이었을까. 언젠가부터 아침이면, 밤 한 포대가 집 앞에 놓여있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할머니는 방 한가운데 밤 자루를 펼쳐놓고, 밤껍질을 까고 있었다. 때론 밤 자루 대신 마늘 자루가 놓여있기도 했다. 아린 손을 참아내며, 저녁을 준비하던 할머니를, 나는 기억한다.
할머니는 유쾌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나운서가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니, 그녀는 진지하게 ‘내가 더 감사합니다’라고 맞장구쳤다. 들을 때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언니와 오빠가 학교에서 늦게 올 때면, 우린 단짝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고, 화투를 치고, 드라마와 개그 프로를 보며 깔깔댔다. 어쩌다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눈을 뜨면, 어스름한 빛 속에 할머니의 작은 중얼거림이 들리곤 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한쪽 다리는 접고, 관절염으로 접을 수 없게 된 다리는 쭉 뻗은 채 앉아 계셨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옴마니반메훔’을 되풀이하며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매일 그녀는 무엇을 빌었을까. 20대에 남편을 잃은 후, 시집에 살며 홀로 아들을 키우고, 말년에 손주들까지 맡게 된 할머니. 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닌, ‘서주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삶은 어땠을까. 어쩌면, ‘옴마니반메훔’은 새벽마다 자신을 다독이는 주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편히 쉴 수 있는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첫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날, 늦게 퇴근한 언니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여행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돈도 두둑하고, 다음날 친구들과 여행 갈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늦은 밤, 좀처럼 울리지 않던 자취방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언니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흐느끼며 울었다. 바라보고 있던, 내 심장은 내려앉았다.
“할매가 돌아가셨대.”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온몸이 떨렸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택시를 탔다. 세상에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국도변을 달릴 때는 암흑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바로 구두를 사서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할머니가 더 오래 세상에 머무를 수 있었을까. 그녀가 서서히 허물어져 가고 있을 때, 나는 그녀에게 ‘다음’을 얘기했다.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차창 밖을 바라봤다. 유리창에는 슬픔에 갇힌 얼굴 하나가 보였다. 내가 울자, 창에 비친 얼굴이 따라 울었다. 멈추려 해도, 일렁대는 눈동자와 마주치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향집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숨결을 잃은 보랏빛 입술의 할매가 있었다. 대청마루에 퍼질러 앉아 현기증이 날 만큼 눈물을 쏟아냈다. 눈이 따끔거리고 쓰라렸다.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천막이 쳐졌다. 온 집안이 문상객들로 북적댔다. 나는 문상을 따라온, 처음 보는 꼬마에게 밥을 먹였다. 아이는 무슨 일로 여기 왔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반찬만 요구하며 칭얼댔다. 나는 쩔쩔매며, 아이에게 밥을 먹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도대체 난 뭘 하는 건가. 무력감이 들었다. 가족들은 음식을 나르고, 수북이 쌓인 빈 그릇들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은 묵묵히 흘렀다. 흐릿한 시야에 뿌연 사각의 물체가 아른댔다. 흰 천으로 감싸고, 광목 끈으로 동여맨 그녀의 요람이었다.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심장이 저릿저릿했다. 곡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다. 가족들과 장정들이 그녀를 호위하듯 둘러서서 동네 어귀로 천천히 걸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꽃상여가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녀는 아득하게 먼 곳으로 멀어졌고, 그녀와 함께 할 시간도 영원 속으로 흩어졌다.
구두를 봤다.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채로 어울리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굽이 나지막하고 연한 베이지색이라 차분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구두 위에 달린 여러 가닥의 태슬 장식은 자그마했다. 한 사람이 소환되었다. 유난히 까맣던 긴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곱게 빗고, 끝이 길고 뾰족한 빗으로 가르마를 타서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고는, 오른쪽 어깨로 늘어뜨려 땋은 후 돌돌 말아 올려 비취색 비녀를 꽂았다. 연한 분홍색 리본 블라우스에 정강이까지 오는 A라인 스커트를 입었다. 진열대의 구두를 신었다. 참했다. 찰나, 내 삶의 기척이 들려왔다. 꿈에서 깨어나듯, 눈은 초점을 다시 찾았다. 언제 어디서든 기다렸다는 듯이 펼쳐지는 ‘할매’라는 존재. 20년이 지나도, 할매는 내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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