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수필의 조건과 과제(3)

안성수(문학평론가, 제주대 명예교수)

 

1.한국수필의 길 찾기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 굳건히 인정받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다. 우선, 문학예술로서의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학성과 철학성을 미적 울림의 동력으로 체계화하는 보편적인 작법(시학)을 정립해야 한다. 수필의 고유한 전통을 계승하면서 수필만의 독특한 미적 영토를 지켜주는 것이 정체성이라면, 시학은 그 정체성의 토대 위에서 문학예술로서의 창조전략을 미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필작가와 연구자들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21세기 한국 현대수필의 질적 상황도 20세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미학성과 철학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야기만 무성한 작품들이 적지 않고, 수필이 소설이나 시 등의 타 장르와 무엇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를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부실한 창작교육과 기준 없는 등단제도, 그리고 빈약한 비평 풍토 등 몇 가지 측면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수필 평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적지 않다. 한국의 어떤 수필 평문들은 대체로 텍스트가 왜 감동을 주고, 주지 못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미학적 분석과 평가보다는 칭찬 위주의 상식적 해설이나 감상에 치우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 땅의 수필 문학이 정체를 보이게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고도 남는다. 비평이 작품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나 논리적 평가보다는 상투적 해설 중심으로 흐를 경우, 수필 문학의 질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수필 문단에 평문을 쓰는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여 평론가라는 이름을 함부로 부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문학과 미학 이론에 대한 체계적 연구나 작품현장에 대한 폭넓은 경험 없이 문장력만으로 뛰어든 일부 평자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런 문단 상황 속에서 평자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확실하다. ‘붓 가는 대로 쓰는’식의, 이른바 비예술적인 산문을 가려내어 문제점을 비판 제시하고, 반면에 미적 울림과 철학성을 조화롭게 함유한 문학 예술적 가치를 지닌 수필 텍스트를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안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문학적이고 미학적인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과정과 평가 결과를 반드시 함께 제공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바람직한 창작의 길로 이끌고 컨설팅해주는 노력과 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본지에 연재형식으로 다루고 있는 ‘예술수필의 조건과 제시’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비평적 컨설팅을 목표로 한다. 이번에는 『수필오디세이』 5호에서 가려 뽑은 정은아의 수작 「전등」을 텍스트로 삼았다.

 

2. 「전등」의 의미구조 분석

 

1)텍스트의 패러프레이즈

이 수필 텍스트는 10개 문단으로 조직되었다. 함축적이고 개성 있는 문장과 성찰의 서술전략이 돋보이는 이 텍스트는 기발한 라이트모티프를 패턴으로 활용하여 주제를 효율적으로 형상화한다. 그 밖에도 객관적 상관물과 콜라주, 상호텍스트성 등의 도움을 받아 신비롭고도 특이한 소재를 영적 커뮤니케이션의 상황으로 흥미롭게 작품화한다. 이 텍스트의 단락들이 함유한 의미와 기능을 패러프레이즈 하면 다음과 같다.

①생이 다시 빛나길 무작정 기다릴 수 없음(재기 욕망 소생). ②아이와 병원문 나설 때 동시에 불이 꺼져 울컥함(죽은 남편 원망). ③아이를 업으며 식은 땀과 눈물을 흘림(아이근심). ④집 안팎 사물이 남편의 신호로 넘침(남편 영적 현시). ⑤새집의 센서등이 켜질 때마다 남편 떠오름(새집 영적 현시). ⑥영화 속 여자 모습에서 내 모습 발견함(객관적 상관물 발견). ⑦영화 속 죽은 아이의 영적 방문과 고백(영적 소통 콜라주). ⑧전등은 남편 마음을 표현하는 매개체임(마음 표현매체 인식). ⑨남편을 놓아주고 삶을 되찾아야 했음(소생 방법 탐구). ⑩전등 강박에서 벗어나 삶의 빛을 봄(남편 죽음 극복).

이상의 요약을 바탕으로 의미구조의 흐름을 살피면, ①변화조짐-②분리단계-③분리단계-④분리단계-⑤분리단계-⑥분리단계-⑦분리단계-⑧변환조짐-⑨변환단계-⑩통합단계로 정리된다. 이제, 이 자료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텍스트 분석에 들어갈 차례이다.

 

2)텍스트의 구조와 서술전략

수필 문학에서 텍스트의 의미작용과 미적 울림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피기 위해서는 크게 소재 통찰과 이야기의 미적 배열구조와 기법, 그리고 서술과 수사전략 등을 유기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따라서 소재를 어느 깊이까지 통찰했는지, 이야기의 통찰 재료들을 어떻게 구조화했는지, 그리고 그 구조에 담긴 이야기들을 어떤 서술과 수사전략으로 형상화했는지 등을 살피는 것은 작품의 의미는 물론 문학성과 예술성을 판단하는 기본적인 근거가 된다.

①소재 통찰의 수준

소재 인식의 차원에서, 먼저 작가는 죽은 남편의 혼령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영적 인식의 문턱쯤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작가의 소통이 깊은 몰입의 결과인지, 아니면 감성적인 염력의 산물이나 작가 단독으로 시도한 상상 행위인지에 관해서는 확인이 불가하다. 하지만, 단락 ⑥,⑦에서 영화 생일에 삽입한 개연적인 시를 통해서 영적 소통의 가능성이나 진실을 동기화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문제는 작가가 어떤 개연성도 없이 일어나는 전등의 깜빡임과 전기 오작동, 교차로 전등의 꺼짐과 현관 전등의 켜짐이 죽은 ‘남편이 보내는 신호’라고 믿었다는 데 있다. 작가에게 발생하는 이런 특별한 영적 사건은 비록 주관적일 수 있으나, 그러한 현상을 사별한 남편의 영적 현시의 신호로 믿고 싶어 했다는 데 진실이 숨어있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고백한 일련의 사건들은 현실적인 실현 가능 여부를 떠나 죽은 남편의 혼령을 상대로 경험한 사실이라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사자의 영혼이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사랑했던 부부간에는 영적 염력이 작용할 수 있는지와는 무관하게, 그런 심리 현상을 작가가 실제로 경험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심령과학적 차원에서라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 절실한 상황을 심리적 착시 현상과 같은 과학의 논리로만 설명하기엔 아쉬움이 크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개연성 있는 우주 의식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비슷한 이야기인 영화 『생일』에 삽입된 시 「엄마, 나야」의 일부를 콜라주 한 것이리라.

②미적 배열구조

앞서 제시한 패러프레이즈를 통해서 이 텍스트의 이야기 조직원리는 통과제의의 의미생성구조인 ‘분리단계→변환단계→통합단계’를 거치면서 주제를 형상화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즉, 이 텍스트는 ①변환조짐→②~⑦분리단계→⑧변환조짐단계→⑨변환단계→⑩통합이입 단계로 이야기의 의미가 흐르면서 주제를 완성한다. 그러므로 통과제의 구조의 단계별 이야기 배분 비율은 분리단계 : 변환단계 : 통합단계가 6 : 3 : 1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 텍스트가 분리단계의 이야기에 절대적인 비중을 두는 대신, 남편 상실의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최소화하고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 텍스트의 주제수렴을 위한 논리적 틀인 로고스 또는 통과제의 형식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과제의는 개개인의 인간들이 인생의 고비에서 겪게 되는 보편적인 의례와 그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설명하는 정신 구조의 틀이다. 예컨대, 반 겐넵에 따르면, 인간은 출생, 아동기, 사회적 사춘기, 약혼, 결혼, 임신, 아버지 되기, 종교단체 입회, 상층 계급으로의 이동, 직업적 전문화, 죽음, 장례식 등에서 유사한 보편적인 의례를 치르고, 그에 따른 의식의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 텍스트를 통과제의적 고통과 극복의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감전 사고로 발생한 충격적 죽음과 그 사건이 안겨준 고통과 상실 체험을 극복하고 다시 생의 현실로 돌아온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③기법과 미적 장치

이 텍스트에서 작가는 패턴과 객관적 상관물, 라이트모티프, 콜라주, 파라독스, 상호텍스트성 등의 기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기법은 주제와 의미를 효율적이면서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도록 도와주는 요소들이다. 특히, 수필처럼 짧은 산문에서 작가의 철학이나 미학, 심리 등을 기능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적절한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전깃불 패턴은 작가가 병원의 전등(②)과 교차로 신호기(④), 현관 전등(⑤)의 깜빡임과 오작동 현상을 우연히 반복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죽은 남편이 보내는 신호로 믿게 하는 원인이 된다. 여기서 패턴은 믿을 수 없는 남편과의 사별 충격과 그로 인한 심리적 원망, 서러움, 불안, 좌절감 등을 겪게 한다. 이것은 작가의 고백처럼 죽은 남편을 자신의 삶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싶은 심리적 욕망의 반영일 수도 있다. “집안에 들어서면, 모든 사물이 온통 그로 넘쳤다”라고 하는 진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혼잣말 패턴은 죽은 남편의 혼령을 상대로 혼자 중얼거리는 영적 대화이다. 그런 행위는 여기저기서 센서등이 오작동할 때마다 그것을 남편이 보내는 신호로 인식하고 있다는 심리적 근거이다. 이를테면, 병원에서 아이를 업고는 “보고 있는 거야? 애 낳고 한 달도 안 된 산모가 보이긴 해?”라고 추궁하거나, 병원문 앞에서 전구가 동시에 꺼지자, “아이가 아프다니, 궁금하긴 했나 봐. 집을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우리가 걱정되긴 한가 봐.”라고 중얼댄다. 또 교차로의 모든 신호가 꺼지자 “당신이지?”라는 영적 추궁을 패턴 형식으로 던진다.

객관적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은 영화 『생일』속에 삽입된 시 「엄마, 나야」이다. 영화 속에서 이 시는 죽은 아이가 어머니를 찾아와 영적 대화를 시도하고, 이 텍스트 속에서는 작가가 죽은 남편을 향해 영적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니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영화 속의 시적 상황은 이 작품과 인물 간의 역할은 바뀌었으나, 작가가 처한 영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정서적 등가물로 충분하다. T. S. 엘리엇의 말처럼, 텍스트 속에서 이 시는 작가의 특수한 정서와 심리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공식처럼 효용성을 발휘한다.

라이트모티프Leitmotif는 주제의식을 이끄는 핵심 기법이라는 점에서 주도 모티프, 혹은 인도 모티프로 불린다. 이 텍스트 속에서는 전등들(센서등, 교차로 신호등)이 그 기능을 수행한다. 전등의 꺼짐과 켜짐은 죽은 남편과 작가 사이에서 영적 커뮤니케이션의 동기와 신호로 활용하면서 주제를 형상화하는데 중요한 인도 기능을 수행한다.

콜라주는 영화 『생일』에 나오는 시 「엄마, 나야」를 부분 인용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문학에서의 콜라주는 원작 내용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 일부, 혹은 전체를 끌어들이는 기법이다. 이것은 작가가 처한 영적 심리적 상황을 유사한 등가물로 제시함으로써 보다 알기 쉽게 전달하고, 문학적 울림을 배가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 생일은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이 영화는 본 수필작품보다 먼저 제작 상영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어떤 창작 동기나 예술성의 창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텍스트는 독창적으로 창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전 텍스트와 후 텍스트 사이에서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면서 창조되기 때문이다.

④서술과 수사전략

작가는 자신의 내면 심리를 효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특별한 서술전략을 사용한다. 예컨대, 영적 대화의 패턴과 성찰을 통한 이별의 슬픔을 극대화하기, 여백을 이용한 견딤과 극복 심리의 형상화, 그리고 역설의 전략 등이다.

이 작품에서 성찰의 언술은 수필의 고백적 본성을 보여주는 서술법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성찰은 서술 화자(작가)가 직접 자신의 마음 속 생각(사유)이나 느낌, 감정, 비판, 해석, 질문, 깨달음 등을 들려주는 서술법으로 작가의 내면세계를 파악하고 알아차리게 도와주는 효과적인 언술 방식이다. 특히, 수필의 성찰 기법은 작가가 자신의 내면 심리나 심리적 정황 등을 고백하기에 유리하고, 사실성과 호소력도 높여준다.

성찰은 수필작가(주체)의 은밀한 내적 발화 방식이다. 따라서 단순 정보 전달방식인 설명이나 대상(객체)중심 서술기법인 묘사와도 구별된다. 수필의 성찰은 작가의 마음 속 생각이나 내면세계를 문학적 수사를 동원하여 들려주는 대표적인 고백 형식이다.

이 텍스트 속에서 성찰은 갑자기 사별한 남편의 혼령과 이승에 남아있는 작가가 불안, 좌절, 당혹감에 떨며 영적 소통을 시도하는 흥미로운 광경을 담아낸다. 이 작품의 성찰 기법은 서술 방법 차원에서 특별한 전략적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사자와의 주관적인 영적 대화를 효율적으로 중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단락②의 “보고 있는 거야? 애 낳고 한 달도 안 된 산모가 보이긴 해?”, “아이가 아프다니, 궁금하긴 했나 봐. 집을 떠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우리가 걱정되긴 한가 봐”나, 단락④에서 “당신이지?”처럼 영적 수준에서의 은밀한 혼잣말Self talking을 중계하기에 제격이다.

둘째, 성찰은 사자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작가의 심리와 안타까움을 효율적으로 고백하는 도구이다.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단순한 정전이 아니라고. 전류로 인한 남편의 죽음이 전류 속에 녹아 온 세상에 흐르는 거라고. 내 마음이 나를 옭아매고 흔들었다. 원망과 미안함과 서러움, 혹은 분노, 불안, 좌절이 공존했다. (중략) 그 후로는 전등의 깜빡임과 전기 오작동이, 남편이 내게 보내는 신호라 믿었다.” 이러한 성찰의 문장은 작가의 내면 심리를 효율적으로 고백하는 도구이자, 진실한 내면의 소리를 진실하고 설득력 있게 들려주는 방법이다.

단락 사이의 공간적 여백 사용도 기능적이다. 한 단락의 끝에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는 한 줄짜리 건너뜀의 여백들은 슬픔의 깊이와 아픔을 성찰하거나 누적시키는 침묵의 사유 공간이다. 외형적으로는 서술이 부재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생략된 서술이 존재하므로 독자는 여백에 숨겨놓은 침묵의 의미와 효과에 신경을 쓰게 된다. 화가 이우환에 따르면, 여백이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관계 작용의 다이내믹한 초월 공간이다. 즉, 큰 북을 치면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지는데, 그때 큰 북을 포함한 바이브레이션의 생성 공간이 여백이다. 예컨대, 그린 부분과 그리지 않은 부분, 내부와 외부가 상호작용하여 울려 퍼지는 초월적 앙양의 공간이다.

그런 논리에서 보면, 이 텍스트의 여백은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으로 발생한 현실적 고통과 그에 따른 심리적 변화와 영적인 적응과정을 암시하는 견딤과 극복의 시공간이다. 따라서 이 텍스트에 담겨있는 10개의 단락은 몽타주로서의 형식적 의미를 지닌다. 각각의 몽타주 사이의 여백은 앞 단락과 뒤 단락의 관계적 의미 작용과 슬픔의 울림을 상호 침투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살아있는 자와 갑작스레 죽은 자의 영적 만남을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울림으로 극대화한다.

짧고 간경한 파라독스 문장도 빛을 내뿜는다. 단락④의 끝부분에서 발견되는 “그는 보이지 않는데, 왠지 그가 보였다.”라는 진술은 바로 앞의 “어쩌면 내 삶 속으로 그를 다시 끌어들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을 인과적으로 뒷받침한다. 이들 문장에 함축된 의미는 아직 작가의 마음 속에 그가 살아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작가의 심리가 갑작스럽게 이승을 떠난 남편의 혼령에게 영적 혼잣말을 중얼거리게 만든다. 그래서 짧고 함축적인 역설의 문장은 남편과의 충격적인 사별이 가져다준 심리적 좌절감을 극대화하여 비극적 울림을 생성하는 동력이 된다.

 

3. 비평적 컨설팅

 

이제, 비평적 컨설팅을 통해서 작품의 미적 울림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차례이다. 모든 작품은 미학적으로 완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평적 컨설팅은 효율적인 창작을 돕는 객관적이고 보완적인 방법이나 기법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제안1은 이야기 배열방식에 대한 문제이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 순서에 따라 서술하는 연대기적 배열방식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이야기라도 배열방식에 따라 설득력과 감동의 힘이 다르듯이, 문학적 이야기의 배열방식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하고, 주제와 의미를 효율적으로 형상화하며, 미적 울림을 극대화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것은 작가의 의무이자, 모든 문학 예술 작품이 요구하는 보편적인 미적 창작의 원리이다.

방법(1)은 이중액자를 사용하는 방안이다. 먼저 단락⑨를 도입 액자에, 단락⑩을 종결액자에 설치한 후, 나머지 이야기를 내부이야기로 삽입하는 방식이다. 방법(2)는 이중액자를 설치한 뒤에 센서등 이야기와 영화 『생일』의 시를 교차나 교착시켜 배열하는 방식이다. 전자의 경우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구조화함으로써 미적 울림을 강화해주고, 후자는 비슷한 상황의 두 이야기를 비교하여 읽게 함으로써 작가가 처한 비극적 슬픔과 안타까운 감정이 시너지 작용을 일으켜 미적 울림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주제와 의미, 미적 울림의 형상화 전략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미적 배열방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상고할 만하다. 그리고 이야기 배열구조는 단순한 소재 차원의 이야기를 예술성이 풍부한 문학적 이야기로 변신시키는 핵심원리를 낳게 한다는 점에서 작가들에게 끊임없는 창의적 실험과 발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방법(3)은 영화 『생일』 이야기의 ‘시’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약간의 서술을 섞어 『생일』 이야기 속의 ‘시’를 도입액자와 종결액자에 삽입하여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이 시는 작가의 이야기를 도입하기 위한 동기부여의 한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주제를 암시하는 사건의 기능을 수행하여 미적 울림을 증진하는 방법도 될 것이다. 그 외도 다양한 배열방식이 존재할 수 있지만 지면 관계로 줄인다.

제안2는 주제 심화의 차원에서 철학성을 집어넣는 방법에 대한 고려이다. 우선, 이 텍스트는 감전 사고로 발생한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과 그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좌절감 속에서 남편 상실의 비극적 상황을 극복해가는 이야기라는 점을 숙고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 속에서 남편 상실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동기이자 사건의 실마리가 된 죽음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가를 깊은 철학적 인식이나 영적 깨달음의 형식으로 들려주면 한층 더 깊은 울림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남편의 죽음에 대한 몰입 통찰은 필수적이다.

제안3은 콜라주의 활용법이다. 영화 『생일』 속의 ‘시’ 콜라주는 본 이야기의 의미와 미적 울림을 창조하는데 시너지 작용을 할 소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텍스트에 배열된 서술상의 위치가 어색하고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앞에서 제안한 것처럼 시 내용을 적절히 분절하여 도입액자와 종결액자에 쓰거나, 시 원문을 모두 인용하여 교차나 교착법의 한 스토리로 사용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 시는 상상력으로 쓴 허구적인 작품이지만 개연성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실제 체험에 대한 리얼리티를 강화해줌은 물론, 슬픔의 정서를 배가 시켜줄 것이 자명하다.

제안4는 남편의 부재와 상실이라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극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주지 않고, 암시적으로 처리한 부분에 관한 아쉬움과 그에 따른 보완 방안이다. 작가는 마땅히 남편의 갑작스러운 상실과 부재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과정과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략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체득하고 문제의 해결을 획득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극적인 극한 상황의 극복과정과 방법에 관한 서술은 긴요하다. 흔히, 작가의 인생에서 모든 과정과 방법은 삶의 중요한 구성요소일 뿐만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하며 체득한 철학적 깨달음의 동인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시련과 극복과정에 관한 생략의 아쉬움은 전체 텍스트의 의미구조를 통과의례로 해석할 때도 발생한다. 즉 분리단계의 이야기 분량이 충분하지만, 변환단계와 통합단계는 다소 서술이 빈약하여 현실 세계로의 이입 과정을 보여주는데 불충분한 느낌이다. 작품 구조의 차원에서도 변환단계를 거쳐 통합 단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깨달음을 통한 작가의 성숙과 미적 완결성을 보여주는 미적 근거가 된다.

 

4. 한국수필의 미래를 위해

 

한국 현대수필이 질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종사자들이 힘을 모아야한다. 작가와 비평가, 교육자와 잡지운영자에 이르기까지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과 임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그만큼 관련 종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좋은 수필은 한마디로 문학성과 철학성이 조화된 개성 있고 울림이 큰 작품이다. 그것은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범한 산문이 아니라, 시와 소설로는 다룰 수 없는 독자적인 작가의 세계를 들려주는 이야기다. 소설을 흉내 내거나 시를 모방할 필요도 없다. 수필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면서 수필의 고유한 맛과 멋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지향해야 한다. 이제는 근거 없는 비논리로 수필을 왜곡하거나, 실험수필 운운하며 미학성이나 철학성이 없는 작품을 양산하는 것도 곤란하다. 수필도 엄연한 문학예술인 이상 미학성과 철학성은 좋은 수필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들도 칭찬이나 해설 위주의 평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보다는 작가들에게 주어진 텍스트에 관한 과학적인 건전한 비판과 함께 미적 울림이 좋은 작품을 창조하는 논리적이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안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미학적인 이론을 기반으로 문제점과 해결책을 함께 제시하고 조언하는 컨설팅 중심의 비평작엄이 필요하다. 그래서 작가와 비평가가 작품의 미학성과 완결성을 놓고 토론을 벌이며 바람직한 창작의 길을 모색하는 상호보완적 노력이 필요하다.

독자들이 질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골라 읽을 수 있도록 평자들이 객관적인 기준과 조언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형서점이나 출판사가 선정한 베스트셀러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현실에서는 평자나 학자들이 바람직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독자들과 함께 텍스트를 읽고 가려 뽑는 객관적인 토론과 평가의 자리도 필요하다.

수필가를 양성하는 교육자와 그들을 등단시켜 작가의 길을 터주는 잡지사 운영자들도 수필 문단이 바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역량 미달의 작가를 양산해야 하는 경영상의 문제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한국수필 문단의 미래를 위해 역량 있는 작가를 양성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과 깊이 있는 질적 교육이 절실하다. 그리고 잡지사는 비록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능력이 미진한 사람을 데뷔시키는 일은 삼가야 한다.

이런 노력이 꽃을 피울 때, 이 땅의 수필 문학은 제 4장르로서의 문학적 가치와 미학을 구현하며 21세기를 선도하는 건강한 장르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다.

 

 

-수필오디세이 7호 가을. <수필비평>예술수필의 조건과 과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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