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움직여 봐 >>>>>
항상 같은 공간 속에 매일 똑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저 커다란 덩어리. 어찌할까. 손으로 주물럭거려 다른 형태로 바꾸고 싶지만, 내겐 그런 능력이 없다. 그저 보이는 대로 바라봤다. 나는 왜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곳만 바라보고 있을까.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것도 조금씩 달라질까.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고 싶다.
현관문을 열고, 반쯤 열린 중문을 통과해 거실에 들어섰다. 또 여기인가. 그날따라 유난히 거실 풍경이 숨 막힐 듯이 답답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매일 맞닥뜨리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왜 버티고만 있을까. 소파에 앉아, 거실을 둘러봤다. 가라앉은 마음이 거실 전체에 깔렸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햇빛이 잘 들어오는 거실 창문 쪽은 놀이매트와 장난감 자리였다. 나와 아이들은 수북이 쌓인 장난감들 사이에 뒤섞여 있곤 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에는, 공부할 공간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창가에 있던 큼지막한 장난감들은 작은 방으로 밀어 넣었다. 거실 창문 왼쪽에는 자잘한 장난감이 든 수납장을 놓았고, 창문 오른쪽은 책장과 책상을 두었다. 나는 연필을 들고 있는 큰애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작은애 사이를 오가곤 했다. 큰 아이가 피아노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책상이 방으로 들어갔고, 책상이 있던 자리에는 피아노를 두었다. 1년 남짓 지나니, 피아노는 작은 방 구석 자리로 쫓겨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눌려있던 내 욕망도 차츰 고개를 들었다. 은근슬쩍 거실 한쪽에 내 책상을 들여놓았다.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노력했고, 찾았다고 여겼지만 흐릿했다. 욕심이 커질수록 마음만 조급해질 뿐이었다. 애를 쓰다가도, 내 앞에 버티고 있는 덩어리와 맞닥뜨리면, 한순간에 공허의 늪으로 빠지곤 했다. 헤어날 수 없는 마음이 나를 지배할 때면,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책상 위에는 책과 붓, 물감들이 깔린 채로 방치되어 있었고, 매트 위엔 아이들 장난감이 흩어져 있었다. 내 삶을 채우려다 깨져버린 내 마음의 파편처럼 어지러웠다. 잠시라도 숨 쉴 틈이 필요했다.
커튼 사이로 틈이 보였다. 민낯처럼 투박하게 다 보여주는 밋밋한 유리창. 거기에는 언젠가 내가 적어둔 글귀가 있었다.
"하늘을 봐. 너를 위한 선물이야."
글귀는 창밖에 보이는 하늘과 하나로 겹쳐졌다. 말간 하늘 배경에, 짧은 글귀가 적힌 액자 같았다. 그저 작은 위안이라도 얻기 위해 적어두었기에, 약간은 의도된 것처럼 다가왔다.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고 싶어, 소파에서 일어났다. 마치 어떤 돌파구를 찾기 위한 사람처럼 갑작스런 충동이 일었다. ‘조금 움직여 봐.’ 머뭇거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까지는 원래 있던 자리가 제격이라 생각하며 단념했었고,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덩치라며 생각을 접었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바삐 움직였다. 창문 근처 바닥에 깔려있던 두꺼운 놀이 매트를 빼내고, 소파와 에어컨 사이에 있는 장난감 수납장을 잡아당겼다. 16개의 바구니가 꽂힌 수납장이라 힘에 부쳤다. 수납장의 바구니들을 1/3 정도 빼내고, 다시 앞으로 끌어냈다. 뒷면에는 먼지가 수북했고, 장난감들이 먼지와 얽히고설킨 채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도 마음 뒤편에 무언가를 숨기고, 털어내지 못해 쌓여 있지는 않을까. 수납장 뒤로 떨어져 있는 장난감을 하나씩 집어, 아이의 감춰진 마음을 털어내듯 털었다. 장난감 수납장을 내 눈에 잘 보이는, 거실 앞쪽으로 끌어다 놓았다.
공간이 생긴 왼쪽 창가로 소파를 밀었다. ‘ㄱ’자 모양의 큼지막한 덩치는 꿈쩍도 안 했다. 혼자서는 뭐든 쉽지 않구나. ‘혼자’라는 느낌에 남아있던 힘마저 빠져나가는 듯 했다. 찬물을 벌컥대며 마셨다. 조금 의욕이 되살아났고, 조금씩 소파가 밀렸다. 먼지들을 쓸고 닦으며 적당한 위치에 놓았다. 정리하다보니, 허기가 밀려왔다. 이러나저러나 때가 되면 뭔가를 채워야만 살 수 있는 존재라서 애달팠다. 영혼의 허기도, 육체의 허기도 무엇 하나 채우지 못한 채로, 소파 위에 그대로 늘어졌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는 고요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빛이 느껴졌다. 세포 하나하나가 녹듯이 간지러웠다. 눈을 뜨고, 소파에 누운 채로 창을 올려다보았다. 창에 적힌 글귀대로 하늘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그 순간에는 배고픔도, 지친 몸도 잠시 잊었다. 소파를 창가로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이제까지 바라보던 하늘과 달리 보였다. 더 가깝고, 푸근했다. 저 하늘은 언제나 내 머리 위에 그대로 있다. 허나 왜 이 순간에 유난히 충만하게 느껴질까. 달라진 건 없다. 단지, 조금 다른 면을 보려했을 뿐이다. 다르게 보려고 하면 할수록 숨겨져 있던 어떤 면이 서서히 다가오는 건 아닐까.
내 마음방에서 몇 년째 요지부동인 상실 덩어리는 마음 한가운데에 놓인 채 그대로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남편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게, 얼려버렸는지도 모른다. 더 차갑게, 더 단단하게. 이제는 그 덩어리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싶다. 살아있는 것은 유연하게 살아야하니까. 온기와 틈이 있어야 어디든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 덩어리진 마음을 따스한 빛 가까이로 움직여, 서서히 녹여 볼까. 그러면, 내 마음방 구석에 방치된 다른 조각들도 훈기를 받아 새로운 공간이 생기지 않을까.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일이, 슬픈 사고(事故)를 넘어 삶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사고(思考)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은 바뀌지 않아도, 생각은 바뀔 수도 있으니까.
아이들이 집에 왔다. 들어서는 순간, 눈이 동그래지며 말했다.
“엄마, 우리 집 맞아?”
아이들이 보기에도 거실이 다르게 보였는지, 들떠보였다. 소파에 같이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사이사이로 환한 하늘빛이 얼굴을 내밀었다가 사라졌다가 또 다시 내밀기를 반복했다. 빛이 들어오는 창 가까이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도 조금씩 지나갔다. 더 따뜻하게, 더 유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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