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ㅡ 정은아
배를 움켜쥐고 응급실에 도착했다. 진료 접수 후 간이침대에 누웠다. 간호사는 내게 이것저것 물었고,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며 잠시 대기하라고 했다. 병원에 오면 아픈 사람이 천지다. 일요일 오후 4시. 이곳에 모인 이는 어딘가 아프다.
꼬마가 침대에 누워 악을 쓰며 울부짖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몸을 기울인 여자가 아이를 토닥였다. 한 발짝 옆에 선 남자는 팔짱을 낀 채로 주변을 둘러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링거를 맞는 할머니 옆에 중년 여자가 큰소리로 호통치듯이 통화를 했다. 덩치 큰 남자에게 몸을 기댄 채 응급실로 들어서는 자그마한 여자도 있었다.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아저씨는 누군가를 찾듯이 두리번대며 내 앞을 지나갔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의사가 슬리퍼를 끌고 바쁜 걸음으로 다가왔다. 피검사, CT, 초음파 검사 등의 결과가 나왔단다. 소위 맹장이라고 부르는 충수에 염증이 생겼단다. 염증 수치가 높고 충수 부위가 많이 부어 있어서 수술하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보호자는 어디 있습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내가 아이들의 보호자인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내게도 보호자가 있어야 했나. 내 보호자는 누구지. 결혼 전에는 부모님, 결혼 후엔 남편. 보통 그러하다. 배가 더 아파지는 것 같았다. 머뭇대고 있으니, 의사가 다시 물었다.
“보호자 같이 안 왔어요?”
의사는 내게 재촉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보호자가 빨리 와야 오늘 내로 수술받을 수 있어요.”
내가 핸드폰을 꺼내 들자, 의사의 슬리퍼 소리는 멀어졌다. 전화번호를 꾹꾹 눌렀다.
“놀라지 마세요. 배가 아파서 응급실 왔는데 맹장염이래요. 수술동의서에 사인해야 한대요. 아버지, XX병원에 와주세요.”
“애들은? 같이 있냐?”
“집에 있어요. 엄마한테는 애들 좀 부탁해요.”
“알았다. 곧 가마.”
산통에 버금갈 복통이 이어졌다. 고통이 잠시 잦아들 때면 주변이 또렷이 보였다. 그저 서로를 지켜봐 주는 흔하디흔한 사람들의 모습. 별것 아닌데 별것이 되는 순간. 육체의 통증이 내면의 가장 취약한 곳을 찾아내 찔러댔다. 굳이 찾아서 드러낼 필요가 없는데도 쉽게 들키는 허점을 지닌 곳.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마음이, 몸이 아프면 왜 이리 물러 터지는가 싶다. 사방이 트인 간이침대가 불편했다. 누워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커튼을 칠 수 있었다. 외부의 시선과 밖으로 향하는 나의 시선을 다 차단하듯이 커튼을 쳤다. 오직 ‘나’만 남은 공간. 무엇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을 자유로움. 다른 면으로 보면 고립인가. 사람은 원래 혼자야. 괜찮다. 괜찮다. 이런 상황을 또 만들지는 말자. 아프지 말자. 나는 아프지 말자. 직육면체 안에 나를 가두고, 오지 못할 보호자와 내게 오고 있을 보호자를 기다렸다. “괜찮으세요?” 커튼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네.” “보호자는 오셨어요?” “오는 중이에요.” 커튼을 반쯤 걷었다.
나를 돌봐줄 보호자들이 응급실을 두리번거렸다. 커튼을 열어젖히고 그들에서 팔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뒤를 따라서 할머니 손을 잡고 종종대며 걸어왔다. 엄마는 딸이 수술할 동안 집에서 기다리는 게 더 힘들다고 판단했나 보다. 사위를 사고로 잃고 난 후,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걱정으로 출렁거리곤 했다. 애써 담담한 척하셔도 찌푸려진 미간과 흔들리는 눈동자는 감출 수 없었다. 아이들은 밝다. 그래서 좋다. 수술하면 괜찮다고 하니,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할아버지를 졸랐다. 아버지는 수술동의서에 사인하고 아이들과 편의점에 갔다 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제 뭘 해도 문제없다. 난 혼자가 아니다. 스스로를 가둔 내가, 나를 해방했다. 아이들이 사탕을 빨며 간이침대에 붙어 서서 내 얼굴을 내려다봤다. 나를 걱정하는 얼굴과 그 속에 담긴 마음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서서히 침대가 움직였다.
“수술 잘하고 와라.”
목소리로 전해지는 격려에 애써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푸른빛 조명 아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수술실은 덜덜거릴 정도로 추웠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기계음 소리도 계속 들려왔다. 슬며시 눈을 감았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가벼운 농담을 섞어가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긴장을 풀기 위해서일까. 곧이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마취약 들어갑니다.”
어느 순간 의식이 흐릿해졌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나이 든 보호자들과 어린 보호자들, 그리고 올 수 없는 보호자를 떠올렸다.
‘이제 곧 괜찮아질 거예요. 걱정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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