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에 찰기가 붙어서인지, 한덩이의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응어리를 주무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단단하고 차지게 맺힌 응어리와 한바탕 씨름이라도 하는 듯해요.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괜한 오기까지 뻗치는게...... 약이 오를대로 오른 내 손가락들이 악착같이 달려들고 매달릴수록 이놈의 응어리는 더 차져만 가지 뭐에요. 그런데요.....글쎄 이놈의 응어리와 달리 말이에요, 제 안에 뭔가가 풀리는 것만 같아요. 이놈의 응어리처럼 뭉치고 맺힌 뭔가가..... 응어리라고밖에는 별달리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그 뭔가가 부드럽게.... 반죽의 시간이 당신에게는 혹 가슴속 응어리를 달래고 푸는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 김숨 [국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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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를 만들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불편한 한 쪽 다리를 뻗고, 두 팔을 걷어부친 채로, 반죽을 치댔다. 온 힘을 다 주는지 엉덩이가 바닥에서 들썩거렸다. 왜 난 그 모습이 재밌게만 보였을까. 반죽이 뻣뻣하니 되직하면 반죽에 둥근 홈을 만들어 물을 부었다.반죽이 무르면, 내가 밀가루를 부어줬다. 밀가루를 넣을 때 날리던 그 가루입자들 속에 할머니가 웃고 있었다. 밀개가 없어서 달력을 둘둘 감아 고정시켜 국수를 밀었다. 밀개 얼마한다고 그걸 아꼈을까. 달력을 온 힘을 주어 반죽을 밀었다. 점점 넓은 원이 되어갔다. 넓게 펴진 원에 밀가루를 솔솔 뿌리고, 골고루 쓰다듬었다. 화장한듯, 뽀얀 원을 차곡차곡 접었다. 도마에 놓고 겹쳐진 반죽을 썰었다. 썰어진 국수발을 손끝으로 뭉치지 않게 탈탈탈 흩어놓았다. 할머니는 국수를 만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감자와 호박, 부추를 넣은 할머니의 칼국수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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