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유희경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벽 한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 나는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면도를 하다가 그제 벤 자리를 또 베였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닮았다
얆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뒷문이 지워졌다 당신, 찾아올 곳이 없다
3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간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이 간판이 하나 걸린다
때 절은 마룻바닥에선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
당신을 한 벌의 수저와 묻는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무덤
먼지의 뒤꿈치들, 사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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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 목을 넣는 짧은 시간, 작가는 사유한다.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은 언제든,어디서든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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