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게 ㅡ이성복
빛이 안 왔으면 좋았을 텐데
빛은 왔어
균열이 드러났고
균열 속에서 빛은 괴로워했어
저로 인해 드러난 상처가
싫었던 거지
빛은 썩고 농한 것들만
찾아 다녔어
아무도 빛을 묶어둘 수 없고
아무도 그 몸무림 잠재울 수 없었어
지쳐 허기진 빛은
울다 잠든 것들의 눈에 침을 박고,
고여 있던 눈물을 빨아 먹었어
누구라도 대신해
울고 싶었던 거지,
아무도 그 잠 깨워줄 수 없고
아무도 그 목숨
거두어줄 수 없었으니까
언젠가 그 눈물 마르면
빛은 돌아가겠지,
아무도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곳,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아무도 태어나지 않고
다시는 죽지 않는 곳,
그런 곳에 빛이 있을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빛의 속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
내가 생각하던 빛의 이미지를 뒤엎어버림.
빛이 없어서 상처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드러나지 않아도 아픈건 어쩔 수 없지.
드러나도 이겨낼 수 있게 빛이 옆에서 도와주니까
빛은 필요해.
처음부터 빛이 없으면 암흑.
거긴 아무 것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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